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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식기]봉화유기그릇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7.16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봉화유기그릇에 관한 소개입니다

목차

1. 유기의 역사
2. 봉화유기의 역사
3. 봉화유기장 고혜룡
4. 전통유기 만드는법에 따른 분류
5. 유기그릇의 효능
6. 보고서를 마치며

본문내용

유기그릇은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식기중 하나인데 만들어지는 만들어지는 고장과 주조방법에 따라 거창유기, 내성유기, 봉화유기 또는 방자유기 백동유기 반방자유기등으로 나뉜다. 그중 나는 유기종류의 하나인 봉화유기를 조사하였다.

1. 유기의 역사

유기의 기원은 멀리 기원전 청동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수저 등이 출토되는 것을 보아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수저나 그릇이 출토되었으며 고려시대의 놋그릇은 동 1근에 2∼4냥4돈의 주석을 넣은 것이다. 이것은 곧 주석이 11∼22% 함유된 것을 뜻한다. 이때는 주로 주조와 절삭가공법으로 유기를 만들었고 타모법이 있기는 하였으나 초벌타모에 그쳤다.
조선시대에 들어 와서는 주석의 함량이 규격화되었다. 17세기에는 개성과 안성에서 유기 공업이 성행하였고, 19세기에는 여러 곳에서 유기를 제조하였으나 특히 경기도 안성과 평안북도 정주군 납청(마산면 청정동)이 유명하였다. 당시 경기의 안성에서는 놋그릇을 해마다 60만 개나 생산하였는데 이는 하루에 약 2,000개의 그릇을 만든 것이 되니 얼마나 널리 유기가 보급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또한 납청의 놋점들은 유기 제품 생산으로 1년에 180∼240톤의 놋쇠를 소비하였다고 한다.
유기를 제조하는 방법으로 주조법과 단조법이 있었다. 주조해서 만드는 곳을 ‘퉁점’, 여기서 생산되는 주물을 ‘붓배기’(경기 안성)라 하고, 놋그릇을 단조하여 만드는 곳을 ‘놋점’, 여기서 만든 단조품을 ‘방자’(평북 납청 일대)라 한다. 퉁점에는 6∼7명의 기술자가 있었고, 놋점에는 책임자 외에 11명의 기술자들이 한 조가 되어 일을 함께 하였다.


2. 봉화유기의 역사

우리나라 유기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신라시대에 이미 유전(鍮典)이란 것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매우 발달하여 얇고 광택이 아름다운 유기를 만들었다. 봉화는 지리적으로 숯 생산이 쉽고 수자원이 풍부한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유기는 대체로 19세기 중엽에 시작되어 1900년대 전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봉화는 5백년 전부터 관가에서 유기를 제작하였으며 민가에까지 퍼지기 시작하여 한때 고을 전체가 놋점거리를 형성하였고 이 기록은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나 있다. 또한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조.선조 순조 30년(1830)경 곽씨 성과 맹씨성을 가진 두 사람이 이곳 삼계리에 정착, 유기를 제작하면서 크게 번성하자 이 일대에 유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어 "새롭게 번성하는 마을"이라 뜻의 신흥리(新興里)가 되었다고 한다. 전국 수요의 70%를 차지할 만큼 번창하였으며 `안성맞춤`인 안성유기에도 영향을 미친 한국 유기제조의 발상지인 것이다. 하지만 유기는 해방 후 생활양식이 바뀌어 새로운 합금제품과 플라스틱제품의 보급으로 점차 쇠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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