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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A+] 실학의 경제사상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7.16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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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 개념정의
2.본론 - 실학의 경제 사상 소개
3.결론 - 실학의 의의와 계승

본문내용

◎중농주의
조선 후기 실학파의 하나로서 경세치용학파라고도 한다. 토지개혁과 농민생활의 안정을 주장했던 유형원, 이익, 정약용 계열의 학자를 가리킨다. 주로 상업발달과 기술개발에 많은 관심을 두었던 이용후생학파(보통 북학파를 지칭함)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그 배경인 경세치용은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에서 시작한다. 17세기 이후로 중세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자 일련의 지식인들은 과거를 위한 경학공부에만 치중하거나 사회변화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논리와 제도만을 고집하는 데 반대하여 경세치용을 위한 학문을 주장했다. 중국에서는 17세기 고증학의 제창자인 고염무와 황종희의 학문을 경세치용학이라고 불렀다. 경세치용은 원래 유교경전에 있는 용어이다. 유학은 본질적으로 치자의 학으로 정치경제학을 포함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이전에도 여러 종류의 경세론이 항상 제기되었으며, 사회가 변혁기에 처했을 때 구태의연한 학자들의 태도를 비판하며 유학의 본질을 회복할 것을 주장한 경우는 많았다.
일례로 여말선초에는 정도전, 조준, 권근 등이 사장에 빠진 학자들을 비판하며, 자신들의 개혁론의 사상적 기반인 정주학을 실학이라고 불렀다. 또한 불교나 도교의 경세론으로서의 한계를 비판하며, 주자학을 실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로도 사회의 폐단을 거론하며, 개혁안을 제시한 학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양란 이후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농민층 분해의 진전, 신분제 붕괴, 서구 자연과학과의 접촉 등은 일련의 학자들이 지주제와 신분제에 기초한 중세사회의 원칙을 넘어선 개혁을 추구하도록 했다.
조선시대의 경제의 주는 농업경제이고, 농업경제의 기반은 당연히 토지이다. 다시 말해 근대 이전의 왕조에서는 농업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축이었으며 이로 인하여 토지가 가장 중요한 경제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토지를 관리 운영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를 실시하였으나 토지의 수요에 대한 토지의 증가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어떠한 토지 제도를 실시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 왕조에서는 고려말 과전법을 마련하여 국가가 토지를 관리하는 체제를 마련하였으나 곧 관료에게 지급할 토지가 부족해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현직 관료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접법이 실시되다가, 명종 이후로는 관료들에게 녹봉만이 지급되었다. 따라서 일하지 않고 사는 양반들에게 관직이란 권력과 생계의 수단이었으므로 관직과 토지의 연계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으나 토지 지급 대신 녹봉을 받는다는 것은 생활을 안정적이지 못하게 만들어 토지 소유욕을 증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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