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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규보와 그의 사상과 문학

저작시기 2005.10 |등록일 2006.07.14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10장인 레포트입니다. 대충 쓴 자료가 아니고, 게다가 같은 사람을 조명하는 남한과 북한의 관점 비교를 하고 있어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차

*처음-들어가며
*중간-1. 이규보의 생애
  2. 그의 사상과 세상에 대한 태도
  3. 문학을 통해 본 이규보
(1) 문학에의 고민과 문학적 특성
(2) 동명왕편
(3)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
*끝 -나가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들어가며

고려 후기는 남ㆍ북의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이다.
무신란 과거제도를 시행하면서 문(文)이 숭상되고 무(武)가 천시되었다. 특히 성종 이후 대외 투쟁에 공헌한 무신은 군(軍)의 최고 지휘관에 오르지 못하고 그 직에 문신이 등용되었고, 이후 인종 때는 무신 교육기관인 무학재(武學齋)가 폐지되었다. 묘청의 난 이후에는 무신 멸시풍조가 더욱 조장되어, 무신을 노예 부리듯 하였다. 특히 이 때 의종은 향락생활에 도취하였고, 문신의 교만은 극심하였다.
김돈중이 아버지 김부식의 권세를 믿고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우는 일이 발생하고, 의종의 보현원 행차 때 이소응이 젊은 문신 한뢰에게 뺨을 맞는 모욕적인 일이 생기자, 이에 분노한 정중부는 이의방(李義方), 이고(李高) 등과 함께 문신들을 살해하고 의종을 폐하여 거제도로, 태자를 진도로 귀양보내고, 명종을 왕으로 세웠다.
으로 인해 문신은 몰락했고, 한 세기 가량 계속된 무신정권으로 문신이 담당하는 문학 역시 큰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무신란이 일어난 뒤에도 문학은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활발한 모습을 띠었다. 무신란은, 신라 이래 낡은 인습을 지켜오며 문벌에 의해 권력을 독점하고 자기들의 안일을 도모하는데 힘을 기울인 문벌 귀족들의 특권의식, 사대의식, 형식주의, 보수성과 관련된 문학을 파괴시킨 것이다. 이러한 문학이 파괴됨으로써, 청산해야 할 인습적인 문학 때문에 창조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세력이 새로운 문학을 건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신란 이후 새로운 문학의 동향은 이러한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규보는 그 주역으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동일, 한국문학사상사시론, 지식산업사, 1998, 67~69p.

이규보는 집권 세력이었던 무인들을 옹호하고, 문학 작품을 통하여 무인들의 문예의식(文藝意識)을 충실히 반영한 인물이라고 평가받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에 참여하면서도 도덕적 절조(節操)를 잃지 않았던 인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관직에 대한 욕심이 많아 작품을 신분 상승의 도구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최씨 정권의 문객으로서 봉사하는 글을 작품 세계의 본질로 삼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러한 이규보를 과거에 급제했으나 10년 동안 벼슬을 스스로 하지 않은 듯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규보가 가졌던 생각과 그의 그러한 사상이 반영된 문학 작품을 통해, 그의 문학이 지닌 성격과 의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 자료

-한국문학통사, 조동일, 지식산업사, 2004
-한국문학사상사시론, 조동일, 지식산업사, 1998
-조선문학사, 김일성종합대학, 도서출판 천지, 1989
-남북한 국문학사 비교 연구,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1995
-이규보의 삶과 문학, 전형대, 弘盛社, 1983
-이규보연구, 張德順解說, 새문社,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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