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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사]『중세교회사』요약

저작시기 2003.10 |등록일 2006.07.13 한글파일한글 (hwp) | 36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중세교회사』요약한 보고서입니다.

목차

제 1 장 로마 함락 이후의 기독교권
제 2 장 교황들과 서방교회의 선교
제 3 장 교리상의 갈등과 동방교호의 분할
제 4 장 카톨릭 왕조의 문예부흥(756-882)과 브리튼의 부흥(871-899)
제 5 장 8.9세기의 비잔틴 기독교(717-886)
제 6 장 동서방 교회의 분열(882-1081)
제 7 장 용사들의 시대

제 8 장 제12세기(1124-198)
제 9 장 지사으이 전투교회(1198-1303)
제 10 장 서방 중세 기독교 문명의 극성(1198-1321)

본문내용

제 1 장
로마 함락 이후의 기독교권

데오도시우스 대제의 죽음(395)과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러스(Romulus Augustulus)의 폐위(476)는 채 100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로마 제국의 통일성은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제국의 서쪽은 야만족의 침임에 시달렸으며, 동쪽은 지리적으로는 직접 피해를 받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예전과 다름없었으나 계속 수세에 몰려 있었으므로 그 영토를 넓히기보다는 보존하는데 급급하고 있었다.
야만족들의 대부분은 제4세기 중 비시고트족(Visigoths)사이에서 선교활동을 벌였던 울피리스(Ulfilas)에 의해 이 이단에 물들어 있었다.
이러한 결과, 476년 8월 23일 아직 수염조차 나지 않았던 애송이 로물루스 이우구스툴러스 머리로부터 벗져진 황제의 관이 털이 무성한 야만인 오도바카르(Odovacar)의 머리 위에 씌워졌을 때, 로마와 기독교의 고대사는 이미 종식되어 있었으며, 제국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한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었다.

1. 침략자들 사이의 기독교

당시 유럽 지도는 야만족 침입자들의 경로에 따라서 결정되었다. 이들은 훈족(Huns)을 제외하고는 병사들이기도 할 뿐 아니라 이민들이기도 하였으니 이들은 곧 자기들이 정복한 지역에 정착하였다.
이들 가운데 북 아프리카 왕국을 최초로 건국하고 멸망하였던 반달족(Vandals)은 잔인한 아리우스주의자들로서 정통신앙을 가진 주민들을 간혈적으로 핍박하였다. 이 왕국의 건국자이자 군사적 천재였던 절름발이 가이세릭(Gaiseric, 428-477)은 그래도 마지못해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였으나, 그의 후계자 후네릭(Huneric, 477-484)은 가혹하고 계속적인 핍박을 가하였다. 그는 아리우스주의 이외의 다른 신앙고백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짓고 신도들과 정통교회들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카르타고에 자리잡은 총대주교 권위 아래 아리우스주의는 공식적으로 국교로서 채용되었다. 아리우스주의는 비록 박해를 통해 약간의 변절자들을 얻기는 하였으나, 항상 소수퐈로서의 위치는 면하기 어려웠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은 534년 동방제국 황제 벨리사리우스(Belisarius)의 원정에 의한 왕국의 멸망과 함께 탄압을 면치 못하였다. 반달족의 역사란 겨우 1세기 내에 국한된 것으로서 후세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였다.
당시 야만족에 의해 세워진 국가들이 계속 생존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그들의 지도자들이 정통 기독교 신앙과 양식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성공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 침략자들은 비록 서로마 제국을 복종시킬 무력은 지니고 있었으나 이를 제대로 통치할 수 있는 교육과 경험은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기들이 다시리던 왕국 내에서도 인구비율로 보면 소수를 면치 못했으나 주민들의 대부분은 로마인이자 정통 기독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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