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평가점수D

[피부미용]업스타일의 역사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06.07.12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헤어 업스타일의 역사에 대하여

목차

삼국시대
고구려의 수발(首髮)(고구려~조선)
백제의 수발(首髮)
신라의 수발
고려의 수발
조선의 수발
개화기

본문내용

조선의 수발
고려가 원(元)의 풍속을 따르기 이전까지 전시대인 시라의 수발형태를 그대로 따랐던 것처럼 조선조 역시 처음에는 고려의 풍속을 이어 받아 부녀의 대표적인 머리형태는 얹은머리 즉, 속명「트레머리」라고 하여 쪽머리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수발형태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상고시대부터 전개되어온 전통적인 머리형태였다. 얹은머리와 쪽머리의 머리모양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습속(習俗)이 뿌리깊었음을 볼 수 있다. 얹은 머리는 빗어 넘긴 머리를 뒤에서 두가닥내고, 왼쪽가닥은 오른쪽으로 오른쪽은 왼쪽으로 교차시켜 그 끝을 앞머리로 고정시킨 것으로 보통 그위에 흑색가르마를 얹기도 하였다. 얹은머리는 조선조 중기에 크게 유행하여 다래가 성행하였으며 이 다래를 사용하여 틀어 올려 머리를 더욱 크게 만들어 부(富)를 나타내기도 했는데, 당시 여자복식의 멋과 유행의 집점이었다. 또한 조선시대의 기녀의 머리모양도 예외는 아니었다.풍속화인 김홍도의 「평안감사환영도」를 보면 관기(官妓)의 얹은머리와 동기(童妓)의 사양머리는 대조되고 있다. 동기의 머리모양은 쪽은 두개이지만 비녀는 하나로 쪽을 고정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양머리는 비녀를 꽂아서 새앙낭자라고 했다.또한「정조실록」을 보면 각 궁방의 수사리 의녀 침선비등과 각 고을의 기녀들은 본 발로 머리를 얹은 뒤에 가르마를 써서 등의를 구별하도록 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나라의 기틀이 잡히자 사회에는 퇴폐한 경향이 나타났는데, 머리모양에서도 사치스러움이 유행으로 퍼져났다. 숱이 많아 보이도록 머리를 다듬은 다음에 높고 크게 머리를 틀고, 거기에다 비단과 진주 등으로 갖은 장식을 하는 것이었다. `다리`라고 하는 요즈음의 가발과 같은 것을 머리에 넣고 함께 땋았고 그리고는 두 갈래로 땋은 머리를 감아 놀리고 댕기를 맸다고 한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