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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사]체육사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6.07.12 한글파일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체육사 사진과 내용입니다.

목차

고려시대의 체육

조선 시대의 체육

개화기 및 일제 시대의 체육

본문내용

개설

신라 말기에는 골품제도의 한계성으로 중앙귀족의 분열과 항쟁이 일어나고 이어 육두품세력과 지방호족이 대두하여 중앙귀족을 비판하거나 항거하기 시작한다. 이때 궁예는 후고구려를, 견훤은 후백제를 표방하고 궐기하였다. 궁예의 뒤를 이은 왕건은 기층민과 융합하고 해상세력과 연합하여 수취제도를 개혁하고 새로운 사회관계를 제시하여 고대에서 중세로의 발전적 연결을 마련한다. 왕건은 935년에 신라를 합병하고 936년에 후백제를 멸하여 중세국가 고려를 세웠다.
고려라는 이름은 고구려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취지 하에서 나온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고구려와 같은 강한 민족과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고려는 송, 요 원, 금, 여진, 왜구 등과 자주 대립하였고 그들의 침입을 받기도 하였다.
고려는 밖으로 중국과는 다른 성격의 전통과 사회기반 위에서 문화 밀도가 크게 높아지고 개성 있는 문화의 독창성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고대문화의 모순은 자체적으로 극복하였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이 새로운 문화의식을 토대로 한 강력한 민족의식을 성립시켰다. 고려는 유교정치이념을 표방하였으나 문화적으로는 불교문화였다. 토지는 국유제도였고, 신분은 왕족과 귀족의 최 상류층, 일반관리와 군인의 중류층, 평민의 하류층, 천민과 노예의 최 하류층으로 이루어졌다.

교육

▶무학기관의 설립
고려에는 국자감이라 불리는 귀족학교와 평민자제가 다니는 향학이 있었다. 이 중 국자감에는 칠재를 두어 7개의 전문분야를 공부하게 하였는데, 무학을 공부하는 곳을 강예재라 하였다. 예종 4년(1109)부터 인종 11년(1133)까지 24년간 국자감에 강예재를 설치하여 무학에 관한 학습을 실시하였다. 이는 전통무예의 체계 확립이란 차원에서 무예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무예는 단순한 신체와 무술단련의 단계를 초월하여 정치의 순화와 인간의 교화라는 기본적인 측면과 문무겸전의 인재양성이라는 차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무학을 설치할 당시에는 입학생이 적었다. 그러나 국자감에서 3년 이상 수학한 자에게 과거에 응시할 수 있도록 특혜를 베푸는 등 일련의 국자감 진흥책을 강구하자 무학생의 수가 늘어나고 무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 곳에서 학습한 내용이 순수한 이론교육이었느냐 아니면 실기교육을 병행하였느냐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유학에서 강조하는 대사례, 향사례 같은 예를 행하면서 활쏘기를 하는 의식이 강조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나현성 (1997). 체육사. 형설출판사

이성진 (2004). 체육사2004. 교학연구사

조명렬 (2002). 체육사. 형설출판사

최종삼 (1995). 체육사. 보경문화사


참고사이트

장안편사놀이 http://sca.visitseoul.net/korean/ethnic/i_intangible_properties06031.htm

대한민국 체육사 http://history.sportskorea.net/

서울600년사 http://seoul600.visitseoul.net/index.html

한국의 민속놀이 http://myhome.naver.com/hodol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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