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평가점수B

[역사]분단시대 남북한의 한국사인식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06.07.12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남한 사학계의 한국사 인식
(1) 남북의 분단과 1950년대의 역사인식
(2) 1960, 70년대의 민족사학론
1) 식민주의사학 비판과 민족주의 사학의 계승
2) 민족 문화론
3) 내재적 발전론
(3) 1980년대의 민중사학론
2. 북한 사학계의 한국사 인식
(1) 1945년 해방 ~ 한국전쟁
(2) 한국전쟁 이후 ~ 1960년대 후반
(3) 1960년대 후반 ~ 1980년
3. 1990년대 이후의 남북한의 역사인식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우리 민족의 분단은 미소 냉전체제의 마지막 희생물이다. 소련 동구권의 몰락과 독일통일이후에도 그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남북한은 정치 사회 의식에 있어서 별개의 사회로 남아있다. 따라서 남북한의 분단은 정치체제나 이념의 차이뿐 아니라, 역사서술이나 인식체계에 있어서 너무나 심각한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남북한 역사서술의 차이는 하나의 역사를 영영 다른 역사로 만들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분단 50년의 별개 사회속에서 남북한은 각기 ‘한국사’와 ‘조선사’라고 같은 역사를 다르게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명칭의 차이가 아니라, 그 속의 내용과 인식의 차이다. 이제 본론에서 남한과 북한의 한국사 인식을 자세히 다루어보자

Ⅱ. 본론

1. 남한 사학계의 한국사 인식
(1) 남북의 분단과 1950년대의 역사인식

해방된 직후 민족 분단으로 치닫을 때 통일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노력한 정치 운동은 이후의 힘있는 분단체제에 의해 부인되었다. 그럼으로써 분단 체제를 성립시킨 정치 세력만이 정당화 되었다. 그 당시의 분단체제 인식은 은연중 분단 불가피론, 분단 외세결정론을 앞세우고 분단 체제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역사적 진실은 묻히고 왜곡되었다. 분단후 신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납북, 막스주의자의 월북으로 인해 이로써 남한에는 기존학자들 가운데 문헌고증 gtkgkr자들만이 남았었다. 1950년대 남한의 사학계는 냉전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역사학의 이념이나 사관을 결여한 채 아카데미즘 즉, 고증의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는 학풍만을 유지하였다. 문헌고증사학은 해방직후 30 ~ 40년대의 고증적인 학풍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방법론으로서 실증을 확고히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정국의 좌우갈등과 한국전쟁 등의 극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속에서 더 이상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기보다는 문헌고증사학의 기존의 학풍에만 안주해버리고 말았다.
1950년대에는 민족적인 사상 관념이 거부되고 공산주의 이념에 대응하는 사상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이념이 도입되었다.

참고 자료

한영우 외, 1990 「한국사 특강」서울대학교 출판부
강만길 외, 1994 「한국사(23)」한길사
강만길 1999 「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삼인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