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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프론티어]공모전당선작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06.07.11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4,000원

소개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20주년에 주최한 프론티어 공모전에 제출한 탐방계획보고서입니다.
요새 방송하고 있는 `위대한 유산`처럼 일본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작성했으며 당선되었습니다.

다른 공모전에 도전하실때 참고자료로 쓰세요.

목차

Ⅰ.서론
- 북관대첩비의 반환
- 문제 제기

Ⅱ.본론
- 일본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
- 문화재 반환을 위한 노력
- 우리들의 노력

Ⅲ.여행
- 여행일정 및 예산
- 여행 후 활동계획

Ⅳ.결론

Ⅶ. 추천서
- 룸비니 지도교수 조 택교수님 추천서
-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학예연구관
김성배 선배님 추천서

본문내용

1. 북관대첩비의 반환
지난 11월 20일 오후, 일본에 의해 강탈된 지 100년 만에 북관대첩비가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정부에 반환됐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며 이 땅의 기개를 품은 채 의연하게 존재해야할 북관대첩비가 왜 바다 건너 일본 땅에 있었던 것인가?
1905년 러일전쟁 당시 함경북도 길주군 부근에 주군 하던 일본군 미요시 중장에 의해 강탈되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갔던 북관대첩비는 지난 100년간 야스쿠니 신사 본전 앞 숲 속에 안내판 하나 없이 방치돼 왔던 것이다.
이런 북관 대첩비의 반환은 두 스님의 노력이 컸다. 한국의 초산 스님(한일 불교복지협의회 회장)과 일본의 가키누마 센신 스님(일한불교복지협의회 회장)이 그들이다.
반환에 첫 물꼬를 튼 센신 스님은 지난 96년 조선왕조의 황세손 이구씨의 환국을 추진하면서 야스쿠니 신사 궁사에게 북관대첩비를 환국선물로 드리자고 제안했다. 이어 초산스님과 센신 스님은 지난 2000년 4월에 만나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의기투합한 후, 2003년도 7월에 북관대첩비 한국 범국민운동본부를 조직했다. 또한 3월 1일에는 직접 일본 정부를 방문하여 북관대첩비 반환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하고, 반환 의사를 확인하였다.
이런 5년간에 노력에 의해 북관대첩비는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2. 문제제기
5000년 문화민족이라 자부하는 우리들. 하지만 그 긴 역사의 파란 속에서 우리의 문화재들은 많은 수난을 겪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해외 20개국으로 약 7만 4000여점이 반출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최다보유국은 일본으로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그 중 가장 많이 약탈 해간 고려청자를 비롯하여 도공들을 강제로 데려갔으며, 탑, 사리장치, 불화 등 불교 문화재에도 손을 뻗쳤다. 특히 일본정부 주도로 진행된 비석의 파괴는 우리 역사의 허리를 끊어놓았다. 이성계의 왜구 섬멸을 기록한 ‘황산대첩비’를 비롯해 사명대사의 ‘석장비’ 등 우리 민족의 기상을 기록한 비석 대부분이 파괴됐다. 이러한 일본의 도굴 및 문화재 훼손, 문화재의 해외반출 등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북관대첩비의 반환 기사를 접하며 알게 된 일본으로 약탈된 문화재들의 엄청난 숫자와 그에 대한 반환에 미온적인 나약한 우리들의 현실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과거 우리가 짓밟혔던 역사를 거울삼아 할 일이 있다면 빼앗겼던 유산을 찾아오는 일이 바로 우리 당대에 사는 이들이 해야 되는 일이 아닌가!

참고 자료

이경재(2000). 일본 속의 한국 문화제 : 일본 열도에 살아 숨쉬는 우리 조상의 예술혼. 서울: 미래 M&B
홍윤기(2002). 일본 속의 한국 문화유적을 찾아서. 서울 : 서문당.
박희진(2001). 문화재, 아아 우리 문화재!. 서울: 효경출판
정문교(2003). 문화재행정과 정책. 서울: 지식산업사
네이버 사전.
http://www.restorekcp.or.kr
http://www.dokdocenter.org
http://www.restorekc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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