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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북간도 독립운동세력의 동력

저작시기 2004.12 |등록일 2006.07.11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한국사 소논문
한국 근대사에 있어 항일 독립운동에 관련한 주제.
북간도 지역의 한인 이주지에서
교육과 자치 활동으로 향후 독립운동 세력의 근간을 이루는
인재와 문화를 배출해 낸 북간도인들에 대한 연구.
분량은 학부 리포트 수준이지만,
주제와 연구, 그리고 정밀성은 논문 수준.

목차

Ⅰ. 머리말
Ⅱ. 북간도(北間島) 한인사회(韓人社會)의 성립
Ⅲ. 북간도의 민족교육(民族敎育)의 전개와 영향
Ⅳ. 민족교육 기관의 구체적 사례 연구
1. 서전서숙(瑞甸書塾)
2. 명동학교(明東學校)
3. 정동학교(正東學校)
4. 광성학교(光成學校)
5. 대전학교(大甸學校)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머리말

러시아 연해주와 더불어 한민족의 고대 활동무대였던 간도(間島) 간도는 백두산의 동북방 두만강 대안의 북간도와 백두산의 서남방, 압록강 대안의 서간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한인사회가 형성되었던 북간도는 연길, 화룡, 혼춘, 왕청등 4개현이 중심이 되며 노아령 산맥과 모란령 산맥에서 뻗친 분지와 구릉이 펼쳐져 있고, 해란강, 두만강, 가야하, 부루하통하가 흐르는 지역이다.
는 조선 말기에는 새로운 삶을 개쳑하기 위한 영세민들의 신천지였으며, 나아가 일제 침략ㆍ지배 시기에는 국권 회복과 조국광복을 위한 민족해방투쟁(民族解放鬪爭)의 중심무대가 된 지역이다. 독립운동사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만주 한민족해방투쟁사는 이 일대의 형성된 대규모 한인사회를 바탕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간도역사의 연구, 윤병석, 국학자료원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 체결 후, 국내의 형세는 더 이상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없었다. 이를 인식한 일단의 항일독립운동자(抗日獨立運動子)들은 해외, 간도 연해주 등지로 망명하여 새로운 활동 방향과 근거지를 모색한다. 1907~8년경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수행하던 항일의병들은 일제 군경의 탄압을 피해 북간도 일대로 북상해서 장기 지속적 항일전에 들어가게 되고, 1919년 3.1 운동 이후 독립전쟁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른다. 한편 애국계몽운동계열은 이상설(李相卨), 이동녕(李東寧), 여준(呂準), 정순만(鄭淳萬), 김우용(金禹鏞), 박정서(朴禎瑞), 황달영(黃達永)등이 1906년부터 북간도 용정촌(龍井村)을 독립운동기지로 건설하였고,1906년 9월 서전서숙(瑞甸書塾)을 개숙(開塾)하였다. 이뿐 아니라 1910년을 전후해 용정촌은 물론 북간도 각처로 민족지사들의 망명이주가 계속 이어졌고, 또 빈민대중들의 이주도 더욱 증가해 북간도는 대규모 한인사회를 구성하게 된다. 간도역사의 연구, 윤병석, 국학자료원

이렇게 국내와 국경을 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동포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서 일찍부터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로 부각된 이 지역의 민족운동에 대하여 많은 연구 결과가 발표 되었다.
만주지역의 한인민족운동사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후반 윤병석, 김성준 등에 의하여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 등 독립운동단체와 북간도 민족교육 등이, 고승제· 오세창 등에 의하여 재만한인(在滿韓人)의 사회사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진 이후 1970년대 전반기에 들어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 의해 독립군전투사가 연구됨으로서 전체적인 모습이 갖추어지기 시작한다. 서북간도지역 한인 독립운동 단체 연구 , 박 환

만주지역의 독립운동사 연구는 1980년대에 들어 보다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한인이민사와 1910-20년대에 만주지역에서 전개된 민족독립운동사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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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간도사신론, 서울도서출판 우리들의편지>
<간도역사의 연구, 윤병석, 국학자료원>
<해외에서의 3.1운동, 3.1운동기념사업회>
<북간도지역 한인사회의 형성 연구, 김춘선, 국민대학교>
<1910년대 북간도민족교육기관의 독립운동, 김주용, 동국대학교>
<연변문사자료 제 5집, 교육사료전집 , 연변정협문사자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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