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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회]조선족의 중국 정착과정과 문화 이질화 현상 연구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07.07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족의 중국 정착과정과 문화 이질화 현상 에 관한 내용을 요약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고자료로 활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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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조선족의 중국 정착과정
1. 조선후기와 한말의 조선족 이동
2. 일제시대의 중국의 조선족
II. 농업의 발달과 조선족의 경제활동
III. 정치적 변화와 조선족의 참여
IV. 사회적 변화와 초기 이주민의 적응
Ⅴ. 모국분단과 중국 조선족
Ⅵ. 사회갈등 및 문화 이질화 현상과 그 원인
Ⅶ. 사회 통합과 문화 통일의 방향 과정
참고자료

본문내용

중국의 동북지역에 조선족이 들어온 것은 16세기말부터 17세기초인 명말, 청초 시기였다. 이 때 압록강 근처에는 이미 조선 농민들이 들어와서 정착, 개간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1677년 동북 흥경(현재의 신빈)의 동쪽, 이통주의 남쪽, 압록강 및 두만강의 북쪽을 청조의 발상지로 삼아 봉금지구로 지정하여 한족이나 조선족들이 이곳에 이주하여 개척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조선인들은 이곳에 수시로 와서 농사를 짓거나 완전히 정착해서 중국인들과 함께 거주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빈곤한 농민들이 대대적으로 넘어오자 청조의 지방관리들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1875년 청나라가 러시아의 침략을 막기 위해 봉금제도를 폐지하고 이민정책을 실시하면서 조선인들의 유입은 급격히 늘어났다. 1899년 청‧조 두 나라는 통상조약을 체결해서 이미 월경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동의함으로써 이미 이주해 온 조선족의 합법성을 인정했다.
청조시기에 조선유민들은 대체로 19세기 중엽부터 흑룡강성으로 들어왔는데,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이들의 이주경로는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러시아의 연해주와 우수리강 일대를 거쳐서 들어왔다.
둘째, 1877-1903년에 차르 러시아가 중동(中東)철로를 건설하면서 상당수의 조선 사람들이 축로공으로 일하다가 철로가 완공되자 이 근처에 거주하게 되었다. 철로건설에 참여한 조선인 노동자 중에서 공사가 끝난 후에 조선으로 돌아간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넓은 땅을 보고서는 돈을 벌어서 돌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셋째로는 다양한 국내외적 상황에서 흑룡강성으로 넘어 온 사람들이 있다. 국내적으로 1910년의 ‘경술국치’와 1919년의 3‧1 독립운동‘ 이후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 식민지배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 흑룡강성으로 들어왔다.

참고 자료

- 김병호, 「중국의 민족이론정책과 법률에 있어서의 연변(延邊)조선족의 지위」, 중앙민족대학, 1993.
- 김강일, 「연변조선족의 대 남북한관에 관한 실증적 조사」, 연변대학, 1995.
- 한상복외, 『중국 연변의 조선족 사회의 구조와 변화』(서울대학교 출판부, 1993).
- 국립민속 박물관, 『중국 길림성 한인동포의 생활문화』(국립민속 박물관, 1996)
- 임계순,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은 누구인가』(현암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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