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동양철학 사주]사주의 최고봉인 적천수 통신론 천간 원문 및 한글 번역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7.05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滴天髓(적천수)』

1. 滴天髓 저자 劉伯溫 선생님에 대해서

이름 - 유기(劉基)
생몰 - 1311~1375.
중국 元나라 말기에서 明나라 초기의 유학자이며 정치가이기도 하다. 자는 伯溫, 시호는 문성공(文成公) 청전(靑田) 출생. 천문과 병법에 정통하며 명나라 태조를 도와서 중원을 얻고 성의백(誠意伯)이 되었다.

이상이 사전에 나타난 전부이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688년 전에 태어나서, 624년 전에 돌아가신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 나라로 친다면 1392년에 이성계가 조선을 세웠으니까 대략 그 무렵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고려의 말기라고 보면 되겠는데,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 이 정도로 그친다. 다만 유백온 님의 의미는 `기문둔갑비급대전` 이라는 긴 이름의 책을 지었다는 것으로 오히려 유명하다. 그리고 소강절 선생이 지으셨다는 `皇極策數祖數`를 기록했다고 하는 곳에서도 유백온의 이름 석자는 등장한다.
당시 명태조인 주원장(朱元璋)을 도와서 제갈공명처럼 기문둔갑을 운용했을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가 기문둔갑은 그렇게 활용했을 적에 진가를 발휘하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능히 짐작이 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기문둔갑에 대해 정통한 유백온 님이 어째서 명리학에 연관된 滴天髓를 지으신 것인지에 대해서는 냉큼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왜냐면 보통 기문둔갑을 하게 되면 개인적인 운명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항상 천하의 일을 논하다가 개인적인 길흉화복에 대해서 언급하게 되는 것은 다소 외도를 하신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다시 생각 해보면 적천수는 말년에 작성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처음에는 부귀공명에 마음을 기울이기 위해서 밖으로만 달렸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의 손으로는 이렇게 치밀하고 은밀하면서 심오하고, 함축성이 강한 적천수를 쓰기는 극히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결국 말년에야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더구나 젊어서 공부한 다음에 주원장을 도와서 천하를 통일시켰던 시기가 1368년이다. 그때 나이는 57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대충 7년 정도 지난 다음에 돌아가신 것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어느 세월에 이렇게 한가한 명리서를 지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혹 어쩌면 다른 사람이 지어서 가탁(假託)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봤다. 기문학자가 명리서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른 명리학자가 심오한 의미를 넣어서 명리서를 지은 다음에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책의 내용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서 유백온 선생의 이름을 빌렸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하나의 나라를 통일시키고 건국한다는 것이 그렇게 한가한 일이 아닌데, 어느 사이에 이러한 글을 지었겠느냐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도 문득 든다.
그리고 사실 그대로 유백온 님께서 지으신 것으로 받아 들였을 경우에는 일단 천하를 통일시킨 다음에 천천히 세월을 보내면서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가 천하의 명작인 적천수를 남겼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만한 동기가 있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냐면 모든 것에는 심리적으로 동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는 상식이다. 사람을 때려 죽여도 동기가 있게 마련이어서 실제로 그만한 동기를 찾지 못한다면 살인의 혐의가 있더라도 좀더 연구를 해봐야 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라고 하겠다.

1) 왕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천하를 통일시키고 나면 다시 통일을 시킬 곳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심심하게 되고, 왕을 도와서 일을 할 것도 없다. 그리고 자칫하면 왕으로부터 의심을 사기가 십상이다. 오죽하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가 나오겠는가. 이 의미는 바로 천하를 얻은 왕이 충신을 죽여버린다는 것과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년의 유백온은 왕을 떠나서 조용하게 연구실에서 책이나 보면서 세월을 보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2) 또 하나는 세상이 무상했을 것이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말안장에서 헤매었지만, 결과적으로 얻어진 것은 무수히 많은 원혼들과 또 과부들, 그리고 왕의 의심에 찬 눈초리, 또 자신의 허옇게 되어버린 백발....
이러한 것을 보면서 심리적으로 착찹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겠다. 그래서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밖으로 달리면서 관심을 갖던 기문둔갑과는 달리 구체적인 개인의 운세가 더욱 크게 클로즈업되어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도 결국은 벗어나지 못하고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면서 국가적인 경영에서 개인적인 관심으로 방향전환이 되었을 가능성도 상당히 많겠다.
이렇게 해서 점차로 명리학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얻어진 것을 표현한 것이 滴天髓라고 이해 해볼 수도 있겠다. 원래가 젊어서는 공명을 쫓고 늙어서는 자신을 돌아다본다는 말도 있는 것을 생각 해본다면 크게 틀렸다고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러한 심경이 헤아려 지는 것이다.

본문내용

能扶社稷 能救生靈
신금은 능히 사직(식신상관)을 도우며 능히 생령(인성)을 구한다. 병화는 갑목을 불 사를 수 있지만 辛金이 병화와 합하여 수로 화하면 水生木이 되니 극이 변하여 생이 된다.
熱則喜母 寒則喜丁
신금은 더우면 인수를 기뻐하며 차가우면 정화를 좋아한다. 신금이 여름에 나면 화가 많으니 기토가 있으면 화기를 잠재우면서 金을 생하게 한다. 신금이 겨울에 나면 수가 왕한데 정화가 있으면 물을 따뜻하게 하여 신금을 온윤케 하니 丁火를 좋아한다.
壬水通河 能洩金氣
임수는 강으로 통하며 능히 금기를 설한다. 임수는 申金에 장생하니 金氣를 능히 설한다.
剛中之德 周流不滯
임수[☵]는 강한 가운데 덕을 갖추고 있어 어디 까지 흘러도 막힘이 없다. 임수는 坎이니 中位에 剛爻가 있다.
通根透癸 沖天奔地
임수에 만약 계수가 통근하여 천간에 투출하면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땅을 휘몰아 그 해가 극심하다.
통근을 하였다는 것은 지지에 申子辰이나 亥子丑이 있어서 강의 지류가 막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가 계속 내려 홍수가 나는 것이다.
化則有情 從則相濟
만약 정화를 보면 합하여 정이 생기고, 수가 강하여도 따르면 상호 구제되니 해가 없다. 化는 大化流行에서 뜻을 취했고 相濟는 水火相濟에서 뜻을 취했다. 亥를 天門이라 함은 水木이 있기 때문이다. 지아비 壬이 丁을 보아 木을 생하려는 情을 품으면 정은 임을 따라야 한다.
癸水至弱 達於天津
계수는 지극히 약하나 그 기운 천진(하늘의 구름)에 달한다. 계수는 가장 순수하고 지극한 陰의 성질을 가진다. 계수의 성질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수증ㄱ나 습기와 같다.
得龍而運 攻化斯神
계수가 용[辰]을 만나면 운화를 얻어 공로가 신묘함으로 변화한다.
일체의 공용이 계에서 생한다. 계수는 太一로 양의를 낳고 음양을 낳는다. 變이란 자취의 옮아감이요 化란 신이 가서 없어짐이다.
不愁火土 不論庚辛
계수는 화와 토의 강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신으로부터 생을 받지도 않는다.
지극히 약한 水가 金氣를 설하지 못하고 오히려 金이 많으면 탁해진다는 뜻이다. 비유하면 쇠가 습기를 만나면 녹이 스는 것이다.
合戊見火 化象斯眞
계수는 무를 합하고 화를 보면 비로소 그 상이 나타난다.
무와 합했는데 화를 만났다는 말은 戊癸合하고 다시 化氣의 元神을 본 것이다. 진정한 화상이 된다는 뜻으로 君火의 발단이 坎에서 시작함도 이러한 뜻이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