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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도교의 성격과 역사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6.07.04 한글파일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400원

소개글

한국에 도교가 전개된 것과 그 성격 그리고 각 시대별로 도교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종교관련 수업 중 A+ 받은 자료이니. 약간 수정하면 좋은 결과 있을것입니다.

목차

한국의 도교
성격
수용과 전개
고려시대의 도교
조선시대의 도교

본문내용

조선시대에 와서 고려시대의 과의적 도교는 초기에 왕실의 비호 아래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했으나 성리학적 이념과 의례를 절대시하는 유림의 득세 이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감히 제후의 나라에서 천지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재초를 거행할 수 없다는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 사림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1518년(중종 13) 재초 담당 관청인 소격서(昭格署)가 혁파(革罷)되었다.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도교적 흐름은 수련도교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저술은 한무외(韓无畏)의 〈해동전도록〉이다. 한무외는 이 저술에서 조선의 도맥이 태상노군(太上老君)-위백양(魏伯陽)-종리권(鍾離權)-최승우(崔承祐), 자혜(慈惠)-최치원(崔致遠), 이청(李淸), 명오(明悟), 김시습(金時習)-서경덕(徐敬德), 홍유손(洪裕孫)-곽치허(郭致虛)를 거쳐 자신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중 태상노군은 노자(老子)를 가리키며, 위백양은 후한(後漢) 사람으로 연단(煉丹) 중심의 당 도교에 〈주역〉과 황노(黃老), 즉 황제와 노자의 도를 배합하여 그 이론적 성격을 강화하는 한편 도교의 양생법(養生法)을 강조한 〈참동계 參同契〉의 저자이다. 이 〈참동계〉는 주자(朱子)도 관심을 갖고 〈참동계주석 參同契註釋〉을 펴냈다. 종리권은 금대(金代)에 성립된 전진교(全眞敎)의 종조(宗祖)인 여동빈(呂洞賓)에게 도를 전한 인물로 금단도(金丹道), 이른바 본성적 단학(丹學)의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이처럼 조선 중엽의 저술에서 주장되고 있는 도맥은 실재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당시 도가적 수련에 심취한 지식인들의 가탁(假託)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들 도맥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신라 하대와 조선시대 사이의 실존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명백해진다. 즉 조의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이는 보다 합리적이고 수련지향적인 전진교 계통의 도교를 받아들인 이 시기 지식인들이 유교적 도통론(道統論)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계통을 밝힐 필요성을 느낀 데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이후 조선에서 수련도교나 도교적 은둔생활의 기풍이 형성되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저술이나 의식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후 조선에서의 단학의 도맥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도교와 연관된 인물 등의 각종 이적(異蹟)을 기술한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 海東異蹟〉이나 도교 관계의 각종 변증설(辯證說)을 수록한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등 도교 관계 저술들이 연이은 것으로 보아 지식층의 관심이 지대했고, 그러한 생활양식이나 수련법이 꾸준히 맥을 이어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도교는 이외에도 민간신앙이나 의학 및 민간풍습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도교가 민간신앙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성수신앙(星宿信仰)이다. 이는 특히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신앙으로서 고려시대의 팔성당(八聖堂)에서 보듯이 도교적 성수신앙과 고유한 산악숭배가 결합된 조선 특유의 신앙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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