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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조선시대 군사제도의 변화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30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 군사제도의 변화 양상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전기의 군사제도
1. 5위체제의 확립과 중앙군제
2. 진관체제의 확립과 지방군제

Ⅲ. 조선후기의 군사제도의 변화
1. 중앙군영제도의 발달
2. 지방 군제의 개편

Ⅳ.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커다란 전쟁은 조선사회의 각 부분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를 수반했다. 전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군사제도에 있어서도 그러한 변화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군사제도를 시기적으로는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고, 기능적으로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구분하여 그 구조와 변화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조선전기의 군사제도
1. 5위체제의 확립과 중앙군제
조선시대 군사제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의 군사제도에 대한 부담 방식인 군역(軍役)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군역의 대상자는 원칙적으로는 16~50세의 모든 양인 이상의 남정(男丁)이었으나, 양반계층은 관직을 지니고 있다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빠져나가고, 군역을 부담하는 양반계층도 근무조건이 월등하게 좋은 병종에 편성되었으므로 실제적으로 군역은 양인들만의 부담이 되었다.
군역의 대상자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직접 현역으로 복무하던지, 아니면 현역을 돕는 보조인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는 호보제로 나타났다. 호보는 호수(戶首)와 보인(保人)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은 봉족(奉足)이라고도 한다. 원래 조선의 군역제도는 중국의 부병제(府兵制)를 모범으로 하고 있었는데, 부병제에서는 군역 복무에 대한 대가로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급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지급할 토지가 부족했던 조선에서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지급하는 대신, 현역병인 호수에게 그 부담을 보조하는 보인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었다. 정부는 토지지급에 따른 부담을 덜 수가 있었지만, 군역 자원의 확보가 지나치게 과중해짐으로써 결국 양인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고려시대 중앙군의 2군 6위는 여러 차례의 변화과정을 거쳐 세조 때 5위(衛)체제로 확립되었고, 예종 때의 재조정을 거쳐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명문화되었다. 5위체제는 중앙군과 지방군을 망라한 국방체제로서, 중 · 좌 · 우 · 전 · 후의 다섯 방위에 따라 편성된 의흥위(義興衛) · 용양위(龍驤衛) · 호분위(虎賁衛) · 충좌위(忠佐衛) · 충무위(忠武衛)를 가리킨다. 이 아래에 13개의 중앙군 병종이 각각 나뉘어 소속되어 있었으며, 그 아래에 역시 다섯 방위에 따라 편성된 5부(部) 아래에 전국의 지방군도 각각 나뉘어 소속되었다.

참고 자료

김우철, 「조선시대의 군사제도」, 『조선시대의 중앙과 지방』, 서경, 200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3 ;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199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30 ;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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