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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고려시대의 불상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30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고려시대의 불상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불상의 기원
3. 불상의 의미
4. 고려시대의 불상
1)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
2) 고려시대 불상의 양식
5. 맺음말

본문내용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500년 쯤 지난 뒤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부처가 열반한 후 그의 제자들은 부처의 사리(舍利)를 탑에 봉안하여 예배하였지 부처의 형상을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부처님을 상징하는 빈 의자(椅子)라든가 불족적(佛足跡), 보리수(菩提樹), 법륜(法輪) 등에 예배하였으며, 부처를 인격신상(人格神像)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경전에서도 “부처님의 몸은 만들 수 없다(『증일아함경』 21)”고 하여 금하는 분위기였음을 알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부처님 재세시에 잠시 어머니 마야 부인을 위해 설법을 하시려고 삼십삼천에 오르신 일이 있었는데 그 동안 부처님을 그리워하던 코살라의 파시익 왕과 코삼비의 우다야나 왕이 각각 자마금(紫磨金)과 전단목(栴檀木)으로 불상을 조성했다고 한다(『증일아함경』 28). 그러나 이것은 불상의 기원에 대한 전설일 뿐이며 불상이 조성된 것은 기원후 1세기경부터이고 그 후 쿠샨 왕조 때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현재 정설로 되어 있다.
쿠샨 왕조를 일으킨 대월자족은 중국 감숙성 돈황 부근에서 동방과 서방 사이의 중계무역을 하면서 살던 유목민이었는데 흉노를 피해 서쪽으로 밀려가 서북인도 근처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간다라 지역이었다. 원래 이 지역은 오랫동안 그리스 헬레니즘 계통의 서양인들이 지배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서양문화의 전통이 내려오고 있었다. 또한 이곳은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 때 이미 불교가 전해져서 미란다 왕과 같은 그리스계 왕이 불교에 깊이 귀의했던 것을 『미란다왕문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ㆍ 홍윤식, 『한국의 불교미술』, 대원정사, 1987
ㆍ 권희경, 『불교미술의 기본』, 학연문화사, 1999
ㆍ 김영재, 『불교미술을 보는 눈』, 사계절, 2001
ㆍ 최성은, 『석불 돌에 새긴 정토의 꿈』, 한길아트, 2003
ㆍ 강희정,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청년사, 2002
ㆍ 진홍섭, 『한국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83
ㆍ 진홍섭, 『한국사 8』, 국사편찬위원회, 1984
ㆍ 정영고, 『한국사 17』, 국사편찬위원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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