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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경주포항지역의 독립운동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30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5,000원

소개글

경주포항지역의 독립운동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경주지역의 독립운동
3. 포항지역의 독립운동
4. 맺음말

본문내용

1.머리말
경주지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유적지를 조사하면서, 갖가지 방법으로 알아보았지만 정수기 선생의 기념비만 있을 뿐 다른 유적지는 찾을 수 없었다. 정수기 선생의 유적지도 건천 인터체인지 좌측에 있었지만, 이도 버스정류장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관리도 소홀히 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경주가 고향이지만 인접도시 조사 중에 포항의 독립유적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래에서는 경주지역의 독립운동과 함께 포항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2.경주지역의 독립운동
1) 한말 전기 의병의 김하락(金河洛) 진(陣)의 남하운동
김하락은 서울 사람으로 관향이 의성(義城)이었기에 경북지방과 인연이 있었다. 남한산성에서 배신자에 의해 성을 빼앗기고 남으로 내려와 경북의 의성, 경주, 영덕 일대에서 싸우다 마침내 강구(江口)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가 쓴 진중일기(陣中日記)를 따라 그의 전투 행적을 양력 시간 순으로 살펴보면, 먼저 1896년 4월 12일, 제천(堤川)으로 가서 총대장 유인석(柳麟錫)을 비롯한 많은 장졸들의 환영을 받았다. 4월 13일, 단양(丹陽)에서 자고 14일 풍기(豊基)에 온 것이 경북에서의 출발점이다. 순흥(順興), 영천(榮川)을 거쳐 20일 안동에 도착했다. 여기서 수일 머물다가 4월 28일에 의성군 금성면에 들어와 수정사 밑에 본거지를 만들어 대구 쪽에서 오는 관군과 여러 차례 싸웠다. 그 사이 조성학(趙性學)이 대구의 팔공산 쪽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김하락은 대구를 공격하자고 했으나 조성학이 만류하며 우선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의흥(義興)을 공격하자고 했다.
1896년 5월 9일, 일찍 저녁밥을 먹인 후 진중에 엄명을 내려 어떤 경우라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의병들이 기침 소리 하나 안 하고 밤중에 의흥에 진입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이 아무도 몰랐다. 관청에 들어가 점거하고 무기고를 접수하여 본진으로 돌아왔다. 의흥 공격은 일종의 보급투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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