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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진시황제

저작시기 2004.05 |등록일 2006.06.30 워드파일MS 워드 (doc)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진시황제에 대한 생각

목차

처음으로 황제(皇帝)의 칭호를 쓰다
동문(同文)--문자의 통일
동궤(同軌)-차륜(車輪) 폭의 통일
치도(馳道)의 건설
도량형(度量衡)의 통일
절대자 시황제(始皇帝)

본문내용

진시황제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는 과업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국역사상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통일제국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폭군으로 부각되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중국이 전국 7웅에 의해 분열되어 서로 각축을 벌일 때는 기원전 259년에 태어난 그는 불과 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왕에 즉위하였으나 親政(친정)에 들어가 본격적인 영토 확장작업에 착수한 것은 23세 때였다. 놀랍게도 그의 통일사업은 기원전 230년부터 221년까지는 아주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 기원전 8세기부터 분열된 중국이 하나의 통치체제 밑에서 역사를 전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그는 중앙집권적 전제정치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그는 황제라는 존호를 최초로 제정하고 二世(이세)나 三世(삼세)는 물론 萬世(만세)까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스로 始皇帝(시황제)라 칭했다. 또한 전국을 하나의 통치체제로 편입시키기 위해 郡縣(군현)제도를 실시했다. 황제를 정점으로 西周(서주)(기원전 1122-1771)시대의 봉건체제를 대신하게 됐다. 이후 중국은 2천년 이상 군현재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그의 不老長生(불로장생)에 대한 집착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영원하기를 원하듯, 통일제국이 영구히 존속하도록 온갖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집념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가 기원전 210년 50세의 나이로 사망한후 얼마 못되어, 진제국의 長壽(장수)도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왜 진이 이렇듯 단명하고 말았는가 ? 우리선 통일과업을 완성시킨 진시황제가 사망한 후, 왕위계승을 둘러싼 혼란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뒤를 이었던 泰二世(태이세)황제는 정통성 시비에 말려들기도 했다.
더욱이 중앙집권적 통일제국은 탄생했지만, 아직도 봉건제가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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