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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가]처용가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9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려가요 처용가와 변화양상에 대해 조사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작품연구
1) 원문-악학궤범
2) 현대역
3) 어구풀이
4) 구조와 내용
2. 처용가의 변화양상
1)봉황음
2)처용희
3) 처용무
3. 현대의 처용가
1) 희곡 - ‘처용의 웃음소리’
2) 시- 처용단장
3) 가요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신라의 헌강왕이 학성(지금의 울산)에 노닐다가 돌아가는 길에 개운포에 이르러니 문득 한 사람이 왕의 앞에 나타나 가무하여 덕을 찬양하고는 왕을 따라 서울에 들어왔다. 스스로 처용이라 이름하고는 달밤이면 거리어세 노래 부르고 춤 추다가는 어딘지 모르게 사라졌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은 신이 되었다고 했다. 후인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처용가>를 지었는데, 이러한 「고려사」 악지의 <처용가>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처용이 불렀다는 <처용가>를 내포하고 있으나, 처용이 불렀다는 신라의 <처용가>와는 다른 것이다. 이러한 처용가의 변화양상과 오늘날의 처용가가 어떻게 불리워 지고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작품연구
1) 원문-악학궤범
----중략------
2. 처용가의 변화양상
1)봉황음
처용의 가무는 벽사의 의식에 통합되어 처용무(處容舞)로 발전하고, 이 무곡에 맞추어 불리어질 가사가 고려조에 지어져 불리던 것이 조선도 세종대에 윤회가 그 가사를 개찬하여 봉황음<鳳凰吟>이라 하고 따라서 처용무곡도 <봉황음>이라 하여 “벽사진경”의 의미가 “송축”의 의미로 바뀌게 되었다. <봉황음>은 그 곡이나 가사가 <처용가>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처용가>가 그 완결된 가사를 담기 위하여 그 곡을 반복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매우 특이한 것이다. 곡의 반복에 따라 가사가 반복되는 <정석가>나 가사가 진전되는 <청산별곡>과는 달리, 곡의 몇 번의 반복으로 가사를 완결 짓게 되는 <서경별곡>의 방법과 같다.
2)처용희
조선시대의 처용가는 궁중에서 섣달 그믐에 구나 의식을 행한 뒤,내당에서지당구(池塘具)를 설치하고 노는 놀이 중에 불렀다. 또 구나 의식무이면서 연극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 처용희의 형태가 발전하였다. 처용희는 가면을 쓰고 잡귀를 물리치는 의식의 보편적인 방식의 하나이며, 부락 굿에서도 그러한 예를 흔히 찾을 수 있다. 처용은 신(神)인 동시에 인간이며, 인간적인 감정을 지니고 역신(疫神)과 대결한다는 점에서는 처용희를 연극이라고 말한다.
굿에서 연극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이 처용희의 근본적 성격이겠으나,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이 복합되어 실제 공연하던 처용희를 이루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의 처용희는 용신(龍神), 산신, 불교 의식의 복합이고, <악학궤범>에 전하는 처용희는 처용이 오방(五方) 처용으로 되어 연화무학무(蓮花舞鶴舞)와 복합되어 있으며, 여기(女妓)가 처용가에 있어서 봉황음, 삼진작(鳳凰吟三眞勺) 등의 다른 노래를 하도록 되어 있다. 고려와 조선의 처용희는 주로 궁중에서 거행되는 세말(歲末)의 나례(儺禮)에서 공연되었으나, 민간의 처용희도 있었다. 의식무(儀式舞)로서의 기능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놀이로서의 성격이 확대되었다. 영조 이후에는 중단되었다가 1920년대에 <악학궤범>에 의거해서 다시 시작해 오늘날에 전한다.

참고 자료

윤영옥,『한국의 고시가』, 문창사, 2001.
김수경, 「고려 처용가의 미학적 전승」, 보고사, 2004
금기창, 「처용가에 대하여」, 어문학회(통권 제54호), 1993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www.aks.ac.kr/
문화관광부 문화포털 http://www.culture.go.kr
네이버 http://www.naver.com
국립국악원 http://www.ncktpa.go.kr
국가지식포털 http://www.knowled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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