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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외인문학]김시습의 시세계와 방외인문학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8 한글파일한글 (hwp) | 21페이지 | 가격 3,500원

소개글

김시습의 집은 사대부에 겨우 속하기는 했으나 지체가 낮았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재능이 놀라워 기대를 모았으니 거기에서부터 부조화가 시작되었다.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책을 불살라버리고 세상을 등진 채 방랑의 길에 올랐으며오랫동안 승려 노릇을 하였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단종에 대한 충절이 그런 행동을 한 기본 동기라고 할 수는 없다. 왕위찬탈 같은 사건이 없었더라도 자기 재능에 상응하는 인정을 받기 어려운 처지였고 정신적인 안정을 찾기 어려운 성격이 또한 문제였다.
그의 생애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구태여 기인한 행동을 하면서 일생을 보내기로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환속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농사를 지으려고 해보았지만 소작인의 쓰라림이나 맛보았을 뿐이다. 재능으로 보아서는 자기에게 미치지 못한 서거정이나 김수온이 정승의 자리에 올라 위엄을 뽐내고 있기에 초라해진 자신에 대한 보상책이 있다면 사상과 문학을 뒤집어 놓는 것이었다.

목차

1. 김시습의 생애
2. 방외인문학
3.김시습의 시세계
4. 작품 분석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김시습의 생애

재주가 넘쳐서 그릇 밖으로 흘렀으며
스스로 거두어 모으기조차 어려웠네.
그가 받은 끼는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멋진 것이었으니.

- 율곡의 김시습전 중에서 -

김시습(金時習 1435-93)은 청한자(淸寒子) 등의 호가 몇 개 있었는데, 그중 매월당(梅月堂)이 오늘날 그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설잠(雪岑)은 승려로서 그의 법호(法號)이다. 매월당은 60에 가까운 필생에 아무런 벼슬도 달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공문에는 처사(處士)로 기록되어 있다. 1435(세종 17)∼1493(성종 24). 조선 초기의 학자이며 문인,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그의 선대는 신라 알지왕의 후예인 원성왕의 아우 주원(周元)의 후손이고, 그의 비조(鼻祖)는 고려시대 시중을 지낸 연(淵)·태현(台鉉)이라 한다. 증조부 윤주(允柱)는 안주목사(安州牧使), 할아버지 겸간(謙侃)은 오위부장(五衛部將), 아버지 일성(日省)은 음보(蔭補)로 충순위(忠順衛)를 지냈으며, 그의 어머니는 울선 선사장씨(仙槎張氏)라 한다.
그런데 위의 내용에서 잘못 전해진 부분이 발견된다. 그것은 김시습의 14대조는 인존(仁存)으로 《매월당집》 세계도(世系圖)에 밝혀져 있다.
그러므로 종래에 그의 원조(遠祖)로 알려진 김연·김태현은 잘못 기록되어 전하여졌음이 분명하다. 이 같은 점은 《고려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김시습은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는데, 생지지질(生知之質)이 있었다 할 만큼 천품이 영민하였다. 5세에 이미 그가 신동(神童)이라는 소문이 당시의 국왕인 세종에게까지 알려져 장래에 자못 크게 쓰겠노라는 전지까지 받았다 한다. 영상(領相) 허조(許稠)가 마침내 다섯 살 꼬마를 찾아왔다. 몇 마디 주고받자 바로 무릎을 쳤다고 한다. 대감이 늙을 노(老)를 주자, “늙은 나무에 꽃이 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요(老木開花心不老)” 하고 받아넘겼던 것이다. 학문에 남달랐던 세종대왕이 자기 치세에 나타난 오세공자(五歲孔子)에 대하여 크게 기뻐했음은 말이 필요 없겠다.
매월당을 궁궐에 불러서 박이창(朴以昌)을 통해 테스트하게 했다.

참고 자료

매월당 김시습의 시문학 연구 : 그의 도교사상을 중심으로 , 이지연, 원광대 교육대학원2005.
매월당 김시습의 시문학 연구, 리은주, 성신녀대 교육대학원, 1994.

『한국한시대표작평설』, 민병수, 태학사, 2000.
『한국한시사』, 민병수, 태학사, 2002.
『우리한시』, 신연우, 이치, 2005.
「사대부 문학의 성격과 비판정신」, 『민족문학사 강좌』, 정학성, 창작과 비평사, 1995.
김시습「상류자한서」. 리가원,허경진 옮김,『금오신화.매월당집』,한양출판, 1995.
『한국문학통사』3, 조동일,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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