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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조경]남간정사답사레포트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6.27 한글파일한글 (hwp) | 19페이지 | 가격 1,600원

소개글

우암송시열이 지은 남간정사의 답사레포트입니다
건축 조경 전통양식 모두 담아봤습니다 유용하게 사용하세요

목차

답사에 앞서..
1.우암 송시열은 누구인가?
2.남간정사의 역사적 배경
3.주변 지리
4.남간정사의 공간 구획
5.건축적 요소

본문내용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조선 후기 노론의 거두로 당대 최고의 정치가이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 대전의 소제동에 거주하면서 후학을 가르치기 위한 서당을 건립한 곳이다. 우암은 충북 옥천 구룡천에서 태어나 충북 화양동에서 살았다.그 후 만년에는 대전 소재에 고택을 지어 그곳에서 거주 하였다. 지금은 고택의 안채만 남아있다 한다.그는 고택 근처에 홍농동에 서재를 세워 능인암이라 했는데, 이 능인암 바로 아래에 서당을 지은 것이 곧 남간정사이다. 이 명칭은 주자를 사모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주부자(朱夫子)의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남간정사는 숙종 9년(1683)에 세워졌고, 정조 때 한 차례의 중건과 이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기호학파의 유림들과 제자들에게 주자학을 강론했으며, 병자호란 때의 치욕을 씻기 위한 북벌책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우암은 성리학과 예학의 대가로 당대에 그 학문을 따를 자가 없었으나 성격이 올곧고 두루 원만하지 못하여 주변에 많은 정적을 가졌지만 지극히 자연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성격과는 상반된 버드나무의 유연함을 좋아했으며, 국화와 연꽃의 향기를 가까이 했다. 이러한 우암의 자연관은 <기국정사실기>(杞菊亭事實記)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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