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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순지업적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6.06.27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이순지업적

목차

〈전통사대부인 이순지를 이론학자로 발탁〉
<우주를 한 눈에 본다, 혼천의〉
〈아랍 천문학보다 발전된 조선 천문학〉
〈평생을 천문역법 연구에 바친 조선 최고의 천문학자〉
<우리나라의 역법>

본문내용

이순지(李純之, 1406∼1465)는 본관이 양성(陽城)이고 그의 아버지 이맹상은 공조와 호조의 참의를 지냈고 원주 목사와 강원도 관찰사, 중추원부사를 지낸 고위 관료였으므로 당대의 전형적인 사대부출신 관료이다. 그는 세종 9년(1427)에 문과에 급제하여 동궁행수(東宮行首), 승문원 교리, 봉상시 판관, 서운관 판사, 좌부승지 등을 거쳤고 문종 때에는 첨지중추원사, 호조참의 그리고 단종 때에는 예조참판, 호조참판을 지냈고 세조 때에는 한성부윤(현 서울특별시장), 판중추원사에 올랐다.
그가 누구인지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공식 공적은 다음과 같다 :
`이순지는 전통시기 한국 천문학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은 천문학자이다. 20대 후반에 세종에 의해 천문역법 사업의 책임자로 발탁되어 평생을 천문역법 연구에 바쳤다. 중국과 아라비아 천문학을 소화하여 편찬한 『칠정산』 내편과 외편은 그의 대표적 업적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관측과 계산을 통한 독자적인 역법을 갖게 되었다.`
이순지가 어떻게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엉뚱하게 과학자가 되었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그가 천문학자가 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25세인 1430년경에 세종이 선발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세종이 이순지를 신임한 이유의 하나로 『세조실록』 권 35(세조 12년 1465)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순지의 자는 성보(誠甫)이며 경기도 양성 사람이니, 처음에 동궁행수에 보직되었다가 정미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당시 세종은 역상이 정하지 못함을 염려하여 문신을 가려서 산법을 익히게 했는데, 이순지는 우리나라가 북극에 나온 땅이 38도 강이라고 하니 세종이 의심하였다. 마침내 중국에서 온 자가 역서를 바치고는 말하기를 “고려는 북극에 나온 땅이 38도 강입니다”하므로 세종이 기뻐하시고 마침내 명하여 이순지에게 의상(儀象)을 교정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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