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인천지명]지명연구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5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인천지명에 관하여 쓴 레포트 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나는 인천광역시에 살고 있다.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4동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으며 잠시 안양에서 1년간 살다가 2살부터 인천에 살기 시작하였다. 인천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인천에 있는 중학교를 진학하여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인천 토박이 이며 인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물론 학연이나 지연은 나쁜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사람들보다 인천 사람들을 만나면 더 좋아하고 좋게 본다. 그것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인천을 사랑하며 아직도 인천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인천에서 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천의 지명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인천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초기 태종13년(1413)이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인천을 미추홀(彌鄒忽)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지리지』에 "매소홀(買召忽)현을 일명 미추홀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매소홀은 고구려시대의 인천의 이름이다. 『고려사지리지』에 "인주(仁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소홀현이며 일명 미추홀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미추홀의 "미"나 매소홀의 "매"는 물(水)의 뜻이며 "홀"은 성(城)이나 골로 해석되고 "추"나 "소"는 모두 사잇소리 "ㅅ"으로 풀이 하고 있다. 고구려 시대에 매소홀이라 불리던 인천이 후기 신라의 경덕왕 16년 (757)에 이르러 소성현(邵城懸)으로 바뀌었다. 경덕왕이 신라의 제도나 관직을 중국식으로 고치는 한편, 토박이 말로 되어 있는 땅이름을 모두 그 뜻에 해당하는 한자어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고려 숙종(1095~1105)에 이르러 소성현은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 승격되었는데 이는 인천이 숙종의 어머니 인예(仁睿) 순덕태후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인종(1122~1146)때에는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 (仁州李氏)의 고향이 됨으로 "인주(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말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인천은 경원부로 개칭, 승격되었는데, 이는 인천이 7대 어향(御鄕)이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