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역사학]신라의 골품제도와 호족세력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5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직접 작성한 내용이므로 중복가능성 전혀 없습니다.
신라시대 골품제도의 개념과 성립에서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설명에 이어
6두품으로 대변되는 호족의 성장과정과 성격을 분석했습니다.

목차

Ⅰ. 신라시대의 골품제(骨品制)
1. 골품제의 개념
2. 골품제도의 성립
3. 골품제의 신분구조
(1) 성골
(2) 진골
(3) 두품신분
4. 골품제도의 사회적 제약
(1) 골품과 관등의 규제
(2) 골품과 생활양식
5. 골품제도의 소멸

Ⅱ. 통일신라말의 지방 豪族勢力의 성장.
1. 서론
2. 본론
ⅰ. 호족 세력 형성의 요인
ⅱ. 호족세력의 대두
ⅲ. 호족 세력의 실제와 성격
3. 결론

본문내용

골품제도(骨品制度)란 신라시대에 존재하는 신분제도이다. 골품제는 기본적으로 출생에 의하여 신분이 결정되었다. 신라의 골품제는 전국을 통합한 하나의 신분제였다. 정치적으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면서 신분제는 왕을 중심축으로 한 골품제가 되었다. 골품제는 사로국 형성 시부터 만들어져온 신분제를 바탕으로 법흥왕 7년(520) 율령을 반포할 때 편성된 신분제였다. 당시 왕위를 신성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왕의 종족이 성골이라 칭하여 골품제가 편성된 것이다.
이 제도는 신라인의 사회적 지위와 생활규범까지도 규제하는 것으로 신라사회의 이해에 관건이 된다. 이러한 신분 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설계두(薛瀱頭)가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한 다음과 같은 말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신라에서는 사람을 쓰는데 먼저 신분을 따진다. 그러므로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을 세웠다 해도 한계를 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바는 멀리 중국에 가서 불출(不出)의 지략을 발휘하고 비상한 공적을 세워 스스로의 영화의 길을 열고, 고관의 옷에 칼을 차고 천자 곁에 출입하였으면 족하다. (≪삼국사기≫ 권 47 열전 7 설계두)

이러한 표현은 신라에서는 신분제도에 따라 출세와 활동이 제한 받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화랑세기’에는 골품제에 대한 보다 많은 기록이 나오고 있다. 그 중 골품은 왕위와 신위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김춘추의 말도 있다. 이로써 성골 왕 시대에 골품은 성골과 진골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골품제는 골제(骨制)와 두품제(頭品制)의 합성어이다. 골제는 성골(聖骨)과 진골(眞骨)로 대표되는 왕족으로서 왕과의 혈연관계가 있으며, 두품제에는 6 ․ 5 ․ 4두품의 귀족으로서 왕도(王都)와의 지연관계(地緣關係)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외위(外位)의 규제를 받던 지방인(地方人)과는 구별되는 중앙귀족인 왕경인(王京人)의 신분을 결정해주는 제도였다.

참고 자료

동국대학교 신라문화 연구소 편, 『統一期의 新羅社會 硏究』, 경상북도, 1987.
이종욱, 『新羅骨品制硏究』, 일조각, 1999.
하일식(외), 『한국고대의 신분제와 관등제』, 아카넷, 2000.
이종욱,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김영사, 2000.
이종욱, 『신라의 역사 1,2』 김영사, 2002
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1994.
강만길(외), 『한국사』 5, 한길사, 1994.
김창겸, 『신라 하대 왕위계승 연구』, 경인문화사. 2003.
이윤섭, 『쉽지만 깊이 읽는 한국사』, 백산서당 2004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