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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벽초 홍명희-민중적 민족문화론과 좌우합작론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6.06.24 한글파일한글 (hwp) | 1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벽초 홍명희(碧初 洪命憙, 1888~1968)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다방면에 걸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인물이다. 우선 문화사적으로 한국소설사상 기념비적인 걸작 『임꺽정』을 남겼으며, 1920년대 민족협동전선을 표방하였던 신간회(新幹會)를 이끈 민족지도자였다. 또한 언론인, 학자, 정치가로 다양한 면모를 보이며 한국 근대사의 명망가로 일생을 보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영향력과는 반대로 홍명희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연구는 빈약한 실정이다. 이것은 냉전체제 하, 이념적 대립으로 인하여 남북분단이 이루어졌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북한 정부 수립에 동참하고, 고위직 간부를 역임한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벽초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연구는 금기시되어 있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임꺽정』이 해금됨으로서 문학 부분에서 홍명희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연구 가운데서 주목할만한 것은 국문학자 강영주의 연구이다. 그는 최초 박사학위논문으로 한국근현대역사소설의 전개 과정을 체계화 하면서 벽초를 발견하게 되고, 이후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를 발행하게 된다. 이 책에는 주로 『임꺽정』에 관련한 자료들이나 연구논문 등이 실려 있지만, 벽초가 그의 생애에 직접 저술한 자서전, 칼럼, 시, 수필, 번역문 등이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어, 벽초의 사상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후, 『벽초 홍명희 연구』라는 단행본을 집필하는데, 기존 문학에 치우쳐있던 연구에서 탈피하여 벽초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재구성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홍명희의 저술, 역사학계 연구서, 연구 논문, 주변 지인들의 면담․증언 등을 광범위하게 참고하여 저술하였기 때문에 가장 대표적인 ‘벽초 연구서’로 평가된다. 그 밖에 국문학자 홍기삼, 채진홍의 연구가 있으나 문학부분에 치중되어 있고, 벽초의 생애와 관련한 부분은 기존 강영주의 연구에 의존한 바가 크다. 역사학계의 연구로는 장세윤의 논문이 있으나 이 역시 본격적인 연구논문이라기 보다는 홍명희의 현실인식과 민족운동을 간단히 개관한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들은 이러한 한계 속에서 홍명희의 1920년대~40년대까지 민족운동에 대한 사상적 규명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역사학계의 향후 연구 과제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2장에서 홍명희의 유년기, 청년기 사상 형성과정에 대해서 다루고, 3장에서 신간회 활동을 중심으로 한 좌우합작론, 4장에서는 민중적 민족문화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홍명희의 생애
1. 출생과 사상적 모색기(1888~1918)
2.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혹은 초기 사회주의자 시기(1919~1926)
3. 신간회 활동, 『임꺽정』집필 등 문예활동 및 은둔기(1927~1945)
4. 해방 이후의 정치활동기(1945~1968)

Ⅲ. 좌우합작론 - 신간회 활동
1. 민족협동전선론의 발전과정
2. 신간회 창립
3. 신간회 활동기, 홍명희의 사상 분석

Ⅳ. 민중적 민족문화론 - 『임꺽정』 저술
1. 1920년대, 민중적 민족문화론과 홍명희의 사상
2. 1930년대, 조선학운동과 홍명희

Ⅴ. 맺음말

본문내용

홍명희는 민족 문화에 대해서 시대와 동떨어진 복고적 전통이 아니라 민족사회가 처한 현실에 입각하여 민족과 문화를 인식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우리 사회는 분열의 사회요 원만한 사회가 아니며, 모순의 사회요 통일한 사회가 아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나오는 예술은 이러한 사회의 특질을 포함치 아니치 못한다. 묻노라! 누가 말하기를 예술은 사회적 모순을 초월한다고 하더냐? 『거북전』은 봉건적 충의를 장려하고 『춘향전』은 동양적 정렬(貞烈)을 고조하였다. 미미한 조선의 소설가도 양반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성심만은 충분하였다. 막연히 사회적 모순을 엄폐하고 사회적 모순을 한각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내 견지를 명백함이 대담치 않을까? 예술가도 한 개의 사람이다. 사람의 사회를 벗어난 신이 아니요 또는 짐승이 아니다.

이 글에서 홍명희는 사회를 떠난 정신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문학과 예술의 시대의식 반영을 강조하였다. 또, 이 시기의 조선현실의 시대사조에 맞는 것은 ‘사회변혁’, ‘계급타파’, ‘대항’, ‘해방’ 등의 사상으로 보았다. 그가 신간회 활동을 활발히 하던 시기에 소설 『임꺽정』을 집필하여 ‘조선적 정조’를 살리고자 하였던 것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는 현실주의적인 그리고 민중적인 문화의식의 발현이었다. 또한, 1926년 간행한 『학창산화』에서 그는 조선의 역사, 풍속, 언어에 대한 글들을 다수 수록하였는데, 『임꺽정』이나 이 시기 문화의식에 대한 글들과 관련하여 볼 때 이 역시 민중적 민족문화의식의 보급을 지향한 활동이었고 할 수 있다.

홍명희의 『임꺽정』저술에 이러한 민족문화론적 의도가 있음은 그가 『임꺽정』 저술에 관하여 남긴 두 편의 짧은 글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임꺽정이란 옛날 봉건사회에서 가장 학대받던 백정계급의 한 인물이 아니었습니까. 그가 가슴에 차 넘치는 계급적 ○○의 불길을 품고 그때 사회에 대하여 ○○를 든 것만 하여도 얼마나 장한 쾌거였습니까. (중략) 원래 특수 민중이란 저희들끼리 단결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외다. 백정도 그러하거니와 체장사라거나 독립협회 때 활약하던 보부상이라거나 모두 보면 저희들끼리 손을 맞잡고 의식적으로 외계에 대하여 대항하여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선문학이라 하면 예전 것은 거지반 지나문학(支那文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건이나 담기어진 정조들이 우리와 유리된 점이 많았고 그리고 최근의 문학은 또 구미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양취가 있는터인데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朝鮮 情調)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전자의 글에서는 민중적 의식이, 후자의 글에서는 ‘조선 정조’를 살리고자 한 그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

참고 자료

․ 망원한국사연구실 한국근대민중운동사서술분과, 『한국근대민중운동사』, 돌베개, 1989.
․ 고정휴,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와 조선사정연구회」, 『역사와 현실』6호, 1991.
․ 이균영, 『신간회 연구』, 역사비평사, 1993.
․ 강영주, 임형택 편,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 사계절, 1996.
․ 채진홍 편, 『홍명희』, 새미, 1996.
․ 홍기삼, 『홍명희 - 어느 민족주의자의 생애』, 건국대출판부, 1996.
․ 강영주, 『벽초 홍명희 연구』, 창작과비평사, 1999.
․ 장세윤, 「碧初 洪命憙의 현실인식과 민족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제15집, 2000.
․ 강영주, 『벽초 홍명희 평전』, 사계절, 2004.
․ 이지원, 「민족문화 인식의 전개와 민족문화운동」, 서울대박사학위논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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