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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해]문화콘텐츠로의 전환 남사당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4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영화 왕의 남자의 소재가 되었던 남사당을 영화에서뿐 아니라 그의 존재에 대해서 알아보고 남사당이 문화콘텐츠의 하나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생각해본 레포트입니다. 많은 참고되시고 여러분의 좋은 의견 덧붙이셔서 좋은성과 거두시길 바랍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남사당패
1. 남사당의 정의와 유래
2. 유사 유랑연예집단과의 구분
3.남사당의 구성

Ⅲ.남사당놀이 여섯 가지
1. 풍물
2. 버나
3. 살판
4. 어름
5. 덧뵈기
6. 덜미

Ⅳ. 문화콘텐츠로서의 남사당
1. 남사당
2. 바우덕이

본문내용

Ⅰ. 서 론
작년에 개봉하여 올해 관객 1200만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며 한국영화 흥행 1위를 달성한, 한국 영화 ‘왕의 남자’. 그 영화는 조선시대 왕과 광대라는 인물의 미묘한 감정과 갈등을 그렸다. 영화의 흥행으로 인해 덩달아 원작이 되었던 연극 ‘이’의 매진, ‘안성남사당바우덕이축제’ 등이 인기를 끌면서, 영화 속의 광대들이 활동하던 남사당에 존재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관심을 끌었다. 남사당이란 존재에 대해서 알아보고 남사당이 문화콘텐츠의 하나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한다.

Ⅱ. 남사당패
1. 남사당의 정의와 유래
1)정의와 유래
남사당패란 1900년대 초 이전에 서민층의 생활군단에서 자연 발생적 또는 자연 발전적으로 생성한 떠돌이 민중놀이 집단을 일컫는 이름으로, 꼭두쇠 밑으로 4,5명의 연희자를 두었으며, 독신 남성들로 구성된 남색조직이었다. 현제 남사당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3호 지정되어 있으며 그 놀이에는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여섯 가지가 전해진다. 남사당패의 연원이나 역사적 형성과정을 밝히기에는 현존하는 자료가 빈약한 편이다. 남사당패와 같이 유랑연예인집단에 대한 기록으로는, 『해동역사』에 이미 신라에 인형놀이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고려사』『문헌통고』『지봉유설』『허백당시집』등에서도 그것을 놀았을 광대(廣大)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들은 그때그때의 단편적인 기록에 불과하여 유랑예인집단의 연원까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기록을 통해 유랑예인집단은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서도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조선후기의 사회
조선 후기에 들어와 18,19세기는 봉건통치체제가 몰락하면서 지배계급의 민중에 대한 착취가 반대급부로 가혹해지고, 여기에 다시 농민들의 투쟁이 구체화되고 극렬해지는 때였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봉건경제의 태내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싹트고 발전하기 시작한다. 또한 앞서가는 사상조류로서 ‘실학’이 발생․발전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사회역사적 변동은 여러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함께 나타났다. 또한 ①임진왜란과 호란으로 인한 궁중의 악공과 악생들의 분산, ②한양의 산대도감 폐지에 따른 예인들의 유랑화, ③폐농으로 인한 농민들의 참여, ④각 고을 재인청에 소속된 자들의 중과세로 인한 도피 등과 같은 원인으로 인한 광대들의 증가도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는 이들이 쉽게 동류화 될 수 있게 하였다.

참고 자료

-[육순 광대 통해 만난 남사당패] 월간말지 (통권 148호) (1998년 10월) 김명곤 178 ~ 181 , 월간말
-[조선후기 사회변동과 예술 남사당패] 역사비평 1993년 겨울호359 ~ 366 (1993년 11월) 심우성 , 역사문제연구소
[안성 남사당 풍물패의 관한 연구] 석사논문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범택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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