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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조선시대 공론정치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6.24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100원

소개글

조선시대 공론정치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1. 사림의 대두
2. 권력구조의 변화
1) 성종대 언론권의 강화
2) 중종대 낭관권 형성
3) 중종말 명종대 권신의 등장
3. 정치참여층의 확대
1) 천거제의 실시
2) 공론정치의 형성
(1) 공론수용기능의 확대
(2) 공론형성층의 확대
4. 정치운영방식의 변화
1) 사화의 발생
2) 붕당의 형성과 정치운영방식의 변화

본문내용

1. 사림의 대두

16세기의 정치변화는 사화의 발생과 붕당의 형성을 특징으로 한다. 기존의 연구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 파벌싸움으로 분석하였다. 곧 사림의 등장으로 주도권을 장악을 위한 파벌싸움이 사화를 야기하였고, 그 연장선상에서항구적인 파벌사움인 붕당이 형성되었다고 이해하였다. 이는 일제의 식민지침략을 합리화하고 통치의 영속화를 위해서 국민들에게 패배주의적 좌절감을 조장하려고 제국주의 사학자들에 의해서 날조된 것이었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광복이후에도 크게 수정되지 않고 오랜 기간동안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근래에 이르러 사화와 붕당을 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진행되면서 그 본래의 의미가 밝혀지고 있다. 이 같은 오력은 당시의 실상을 토대로 해서 사화나 붕당이 가졌던 역사적인 기능과 의미를 파악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는 터이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최근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16세기를 통하여 일어난 정치변화를 중앙정치체제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16세기의 정치변동은 사림(士林)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주도권을 장악해가는 과정, 곧 사림정치의 형성과정이었다. ‘사림’은 어의상으로 ‘사족(四足)’, ‘사류(士類)’따위와 같이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의 집단’이라는 의미이다. 사림이라는 용어는 고려 후기의 사회변화와 함께 나타났다. 고려사회는 귀족중심의 성향이 강한 사회여서 소수의 문벌귀족이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정치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비중를 차지하였던 재지세력의 대부분은 향리(鄕吏)로 편성되어 지방행정을 담당했는데 이들이 중앙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고려 말에 이르러 신유학을 바탕으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면서 사족ㆍ사대부ㆍ사림 따위로 불렸다. 이들은 주로 향리출신으로 과거를 통해 정치에 등장한 부류들이다. 출신지는 전국적으로 다양했지만 고려 전기의 관료들과 견주어 볼 때 삼남지방의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은 경제적인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신유학인 주자학과 함께 선진적인 강남(江南)지방의 농법이 수용되었는데 강남농법의 핵심기술은 상경화(常耕化)와 이앙법(移秧法)이었다. 이는 산지보다는 평지가 많은 삼남지방에서 쉽게 수용될 수 있었고, 그에 따른 생산력의 향상은 삼남지방의 신진사대부가 많이 진출하여 주류를 차지하게 한 바탕이 되었다.
신집사대부들은 개혁방향의 설정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었다. 급진개혁파는 개혁의 방향을 공전(公田)에 입각한 전제개혁과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두고, 만민의 지배를 목표로 하여 관료적인 중앙집권을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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