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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19세기 농민항쟁의 원인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4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1811~12에 전개된 평안도 농민전쟁은 바로 19세기 농민항쟁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우리나라 반봉건사항쟁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투쟁이었다. 이러한 농민 투쟁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19세기 농민항쟁의 원인
1. 통치체제의 구조적 위기
2. 향촌지배체제의 모순
3.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4. 신분제적 질서의 붕괴
5. 사회모순의 심화
6. 삼정의 문란
Ⅲ. 맺음말

본문내용

역사발전에서 계급투쟁은 사회혁명의 시기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체의 성립과 해체, 그리고 그 중간에 상승, 전개, 하강을 포함하는 전과정에서 나타난다. 억압과 피억압 간의 모순이 존재하는 한 항상적 대립은 필연적인 것이며, 이 대립에 의해 때로는 투쟁과정이 은폐된 채로 은연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투쟁이 전개되는 것이다. 국가의 부역의무에 응하기는 하지만 고의로 일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일을 망쳐 놓은 투쟁 또는 지주에 대한 지대의 지불을 조직적으로 체납하는 투쟁은 은연한 투쟁이었다. 농민들은 나아가 공공연하게 봉건착취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공공연한 투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부분적저항, 즉 특정 요구나 명령ㆍ법령에 이행을 거부하거나 개개의 권력ㆍ의무에 관해 봉건국가나 지주에 대해 투쟁하는 것이다. 이는 농민들의 피역저항이나 항조투쟁에서 잘 나타난다. 공공연한 투쟁의 둘째 형태는 봉건사회의 전시기에 걸쳐 광범하게 나타나면서도 특히 해체기에 두드러졌던 유리(流璃)ㆍ도망(逃亡)의 형태였고, 세 번째 형태는 농민항쟁의 최고형태인 봉기였다. 즉 사회발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투쟁은 정치ㆍ경제ㆍ이념적 변화를 촉진시켜 사회구성의 이행기를 표면화시킨다.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투쟁형태인 농민봉기나 농민전쟁은 봉건 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있어 아래로부터의 변혁의 길을 전망케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 자체가 봉건사회 모순의 담지자인 농민층이 그 모순을 해결하면서 스스로 변혁주체세력으로 자기를 확립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1811~12에 전개된 평안도 농민전쟁은 바로 19세기 농민항쟁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우리나라 반봉건사항쟁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투쟁이었다.

참고 자료

고동환, 〈1811~12년 평안도 농민항쟁〉《한국사10》,1994
망원한국사연구실 19세기 농민항쟁분과, 《1862년 농민항쟁》, 동녘, 1988
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2004
조상제외《한국근대농민항쟁사》, 느티나무,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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