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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17세기 동아세아세계 속의 조선과 서양의 접근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3 한글파일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17세기를 기점으로 달라진 동아시아세계의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서양의 접근이 이루어지는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 인식론상 폐쇄적인 사회로 일관했던 것으로 알려진 조선사회에서도 이미 북벌론과 왜관무역을 통해 지속적인 외부로부터의 정보와 문물이 유입되고 있었다. 그러나 외부문물의 수용에 비교적 능동적인 자세를 취했음에도 근대로의 이행에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만회한 것은 되지 못했다. 이점에서 바로 16세기부터 지속적으로 외부문물에 개방적인 자세와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일본의 대외관계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로 일방적인 긍정과 부정은 학문적인 객관성을 저해하는 인식적 장애가 된다. 이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선과 일본이 처한 사회적 구조나 인식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과정상의 차별성을 따져 봐야할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북벌론과 서양 문물의 수용
3. V.O.C의 아시아무역과 조선통상시도
4. 왜관과 은무역 -실버로드 속의 조선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17세기 조선은 양란을 거치면서 국가재건에 대한 고민이 대두하게 되었고 명․청교체기라는 대외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외부의 충격은 곧 내부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의 형성을 이끌어냈지만 외부에 대한 충격을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소화해낼 것인가는 논란이 되었다. 전란에서 피해자적인 입장에 처한 조선은 중원을 재패한 청국과 도쿠가와 막부에 대해 우려와 경계심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동아시아 삼국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양제국의 접근이 이미 1세기 전부터 시작되었고 이 무렵에 들어서는 중국과 일본해안일대에서 활발한 교류관계가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조선은 청과 일본에 비해 서양의 접근이 늦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동북쪽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서양인의 접촉대상이 되지 못하고 그 범위 밖에 있었다. 둘째, 조선왕조의 무역활동이 활발하지 못해 서양인과 접촉이 매우 적었다. 셋째 유교적 전통사회의 해금정책으로 말미암아 우연히 표착해 온 서양인과의 문화적 교섭기회마저 이용하지 못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구만옥, 2003, 「16~17세기 조선 지식인의 서양 이해와 세계관의 변화」

참고 자료

김양선, 1967, 「인․효 양조 난인의 표도와 한․중․일 삼국의 외교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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