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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원론]금호타이어의 꾸안시 구축 사례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3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관계구축이다.
이와 관련된 금호타이어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서울대에서 A를 받은 보고서입니다.
읽어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목차

1. 금호 타이어의 역사
2. 금호 타이어의 중국에서의 꾸안시 구축

본문내용

1996년 금호(주)는 상호를 금호 타이어로 바꾸고 타이어 산업을 집중 육성해 2000년에 Big 5 타이어 업체가 된다는 목표 아래 사업을 재구축했다. 그 해 남경 금호 타이어는 총 1억 1977만 달러를 투자해 남경 공장을 20개월 만에 건설해 1996년 11월 준공식을 앞두고 있었다. 첫 해외 진출이었기에 그룹 전체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중국 진출 프로젝트의 거의 막바지에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 법규상 3천만 달러 이상의 투자의 경우 중앙 정부의 비준을 받아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강소성 정부는 투자를 빨리 유치하기 위해 3천만 달러 미만의 4개 프로젝트로 쪼개 성 정부 차원에서 일을 진행시켰고 이런 사실을 모르고 준공식을 준비하던 금호 타이어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호적에도 없는 공장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만약 중국 정부가 나중에 트집을 잡으면 대책 없이 쫓겨 나야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단지 축하 사절 차원에서 추진했던 중앙 정부와의 접촉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원태 사장은 무작정 화공국장(우리나라의 산업 자원부 장관에 해당)을 찾아가 참석을 요청했지만 중국 정부에서 허가하지 않은 일이라며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이원태 사장은 중국 화공부 리용무(李勇武) 부부장과 1993년 베이징 대표로 처음 중국으로 들어간 뒤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당시 리용무 화공부 부부장은 톈진시 화공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타이어 공장 건설 후보지로 남경과 톈진을 저울질하던 시기인지라 리 부부장과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물론 타이어 공장 착공지로 남경을 택한 뒤라 리 부부장과의 공적인 관계는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톈진과 논의가 끝난 뒤에도 성의를 다해준데 대해 감사해 리 부부장에게 월병(추석 때 인사치례로 돌리는 중국식 과자)을 보내는 등 꾸준한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 이원태 사장은 리용무 부부장과의 꾸안시를 이용해 무사히 준공식을 끝낼 수 있었고 그 뒤 강소성 정부를 재촉해 중앙 정부의 비준을 받고 1997년 1월부터 본격적인 생산과 판매에 들어갔다. 이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중국 비즈니스에서 꾸안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금호타이어 Annual report 2003
KUMHO TIRES : Investor Relations 2004
Carlife(2004. 8), ‘내년 목표 중국 래디얼 타이어 교체 시장 1위
매일경제(2005. 10. 7), ‘타이어업계 증설 또 증설’
매일경제(2005. 8. 16), ‘한국, 금호 타이어 중 생산,유통망 확충’
매일경제(2005. 5. 17), ‘금호 타이어, 중 알짜 공장 팔아 위기 극복’
매일경제(2005. 4. 21), ‘해외공장 더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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