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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행주산성을 다녀와서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2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행주산성을 다녀와서 쓴 감상문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성(城)
1) 인류 역사 안의 성
2) 한국의 성

2. 행주산성의 구조와 역사적 배경
1) 행주산성의 모습
2) 행주대첩과 권율장군

3. 행주산성을 택한 이유와 의의

Ⅲ. 결론

본문내용

2. 행주산성의 구조와 역사적 배경
1) 행주산성의 모습
행주산성은 1963년 사적 제 56호로 지정되었으며 앞서 언급했듯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에 소재하고 있다. 행주산성은 흙을 이용하여 쌓은 토축산성으로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행주산성의 모습을 살펴보면 험한 절벽을 이용하면서 펼쳐지는 넓은 평야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 전기의 산성 형식과 유사하다. 산꼭대기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내성과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2중구조를 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에워싸고 돌아, 자연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땅이었으며, 서해안과 연결된 수로의 거점지역으로 남북 교통의 요충지대였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조각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오고, 물고기뼈무늬를 새긴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어서 고려시대까지도 사용해 왔고 중요한 군사적 요새지 역할을 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행주산성은 그 넓이가 0.16km²에 이르며 테뫼식으로 이루어진 토성은 총길이가 약 1km에 달한다. 1992년에 토성의 412m를 복원했다. 행주산성의 대첩문을 통과하면 곧 충훈정, 국궁장이 나오고 권율장군의 동상이 존재한다. 이러한 동상 주위에 임진왜란 당시의 하나가 되어 싸웠던 의병이라든가, 관군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충장사,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이 충장사는 1842년 행주나루터에 창건하고 권율장군의 영령을 모셨던 기공사가 6.25때 소실되면서 1969에서 1970년 정부의 행주산성 정화사업 추진시 건립되었다. 앞서 말한 행주산성의 입구인 대첩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충장사의 현판은 한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이다. 이 충장사 외각에 중건비가 있는데 이 중건비는 1845년 기공사에 세운 것을 이전한 것이고 1963년 경기도 재건운동 본부에서 세운 비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충장사를 나와 걷다보면 1980년에 건립한 대첩기념관이 있는데 원래 이 자리에 구무기고와 군량창고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 곳에서 독산성의 전투도나 행주대첩 기록도, 그 당시에 쓰였던 무기등을 확인할 수 있다. 덕양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덕양정과 진양정이라는 두 정자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것은 행주산성 정화사업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본디 행주산성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은 아니다. 덕양산 정상에는 1602년 권율장군의 휘하장수가 세웠다는 초건비와 1970년 문화재 정화사업으로 세운 15.2m의 높이의 대첩탑이 존재하고 있다. 그 옆 쪽으로 충의정이라는 영상교육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현재 행주산성의 모습이다. 행주산성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행주산성이 권율장군의 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것은 행주산성이 지닌 역사적 배경때문일 것이다.

참고 자료

송원재 『교육비평 6권』「행주산성에는 행주치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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