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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조프랭 부인의 살롱일기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6.06.22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서양 살롱 문화에 대한 내용을 실존했던 `조프랭`부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가상의 일기를 통해 소개하는 보고서입니다.

목차

1770년 5월 어느날 살롱 운영을 회고하며...
<1750년 5월 15일 : 살롱 설립>
<1753년 5월 30일 월요일>
<1757년 8월 4일 수요일>
<1760년 8월 10일 금요일>
참고 문헌

본문내용

1770년 5월 어느날 살롱 운영을 회고하며...

사람들은 나를 조프랭 부인이라 부른다. 혹자는 나를 ‘파리의 러시아 황후’라고도 한다. 나쁘지 않는 칭호다. 나는 1699년에 시민 계급의 집에서 평범하게 태어났다. 그렇지만 나는 귀족 여자들의 생활에 나름대로의 동경 혹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표출을 살롱을 통해 하고자 나는 탕생 부인의 살롱을 물려받기 위해 여러 해 동안 그녀의 살롱을 드나들었다. 지금 내가 운영하는 살롱은 그녀의 것을 물려받아 1750년에 문을 연 것이다. 당시는 살롱의 수와 중요성이 막 커지기 시작한 때이다. 멘 후작 부인의 살롱에서는 주로 정치 문제를 논했고 랑베르 후작 부인의 살롱에서는 화요일마다 몽테스키외 등의 문학가들이 초대를 받았다. 1725년 이후에는 탕생부인의 살롱이 융성하여 문학가들 외에도 재정가 궁정인 법관 군인 심지어 신부들도 드나들어 당시 지적 생활의 온상이 되었다. 나는 귀족이 아닌 탓에 귀족 여자들처럼 교육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나는 계급을 내세운 사교생활이 아닌, 문학과 예술과 관련한 살롱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고 재정적 지원은 공장주인 남편으로부터 받게 되었다.

살롱은 본래 궁정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파리의 루브르궁에서 1667년부터, 1725년부터는 왕궁의 카레 살롱Salon Carre에서 열린 전람회가 이미 “살롱”의 새로운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살롱이라는 단어는 오랜 세월 동안 궁정의 사교문화에 국한되어 지칭되었고, 궁정을 떠나 사교문화에 사용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시민계급인 내가 살롱을 개척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탕생 부인의 살롱을 계승하려 한 것이다.

우리 살롱에는 월 수 매주 2회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이 모였다. 월요일에는 반 루, 부셰, 라 투르 , 위베르 로베르 같은 화가나 조각가인 보샤르동, 건축가인 수플로, 코솅, 팔코네, 그리고 고고학자들이 살롱에 모였다. 수요일 모임과는 달리 이 모임에는 살롱 여주인과 레스피나스양을 제외하고는 여자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수요일에는 마리보, 그림, 마르몽텔과 백과전서파에 속하는 철학자들, 즉 달랑베르, 헬베티우스, 홀바흐와 문필가들이 모였다. 나는 화가들의 그림들을 비싸게 사들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의 살롱은 천박한 귀족들의 사교모임 따위가 아닌 예술 지향적 살롱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 계몽주의 시대의 살롱문화 - 진일상
- 네이버 백과사전 검색 : 각종 용어들
- 프랑스 사회와 문화 : 샤를 드뷔시&장마리 퐁티에 저
-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 콜린 존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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