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근대역사학자]단재 신채호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6.22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깔끔하게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단재 신채호의 생애
2. 단재 신채호의 역사인식
3. 단재 신채호의 역사저술
4. 단재신채호의 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1. 단재 신채호의 생애
● 출생과 주위환경
신채호는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고령 신씨인 신광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마을에는 신숙주의 후예들 수백 호가 집단부락을 이루며 살았다. 이들은 조선조의 향반(鄕班)으로서 재산으로나 신분으로나 행세깨나 하는 명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7살에 아버지를, 15살에 친형(재호)를 잃은 신채호는 할아버지 신성우(급제해 오른 벼슬을 일찍이 버리고 고향에서 서당을 꾸렸음)에 의해서 키워졌다.
이때 그가 살던 마을에는 그만한 또래의 재동들이 많았다. 뒤에 독립투사로 활약한 신규식(상해 임시정부 국무총리대리), 신건식(주중대사) 형제, 신석우(조선일보사 사장), 신백우(서로군정서 참모) 등이 각기 꿈을 안고 면학에 열중했던 것이다. 신석우는 신채호의 족조 신규식은 신채호의 족숙벌이 된다.
할아버지의 손에 의해 신채호는 17살에 개화사상으로 들끓던 서울로 보내졌다. 봉건유학의 이론적 교두보였던 당대 최고의 대학 성균관에 들어가 백암 박은식이 주도한 일부 진보적 유학경향에 접하면서 청년 신채호는 유교학문의 한계를 깨닫고 봉건유생의 틀에서 벗어나 점차 민족주의적 세계관을 갖게 된다.

● 많은 논설로써 독립투쟁 전개
신채호는 스물에 성균관박사라는 벼슬을 얻었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국립대학 교수가 된 셈이다. 그러나 그가 학생들을 가르칠 당시는 나라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벼슬을 버리고 구국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황성신문사에 들어가 박은식, 장지연, 주시경 등과 함께 “누를 수 없는 북받치는 정열을 한 자루 붓에 맡겨 민족의 심장을 쳐 움직이는” 논객의 길을 택하게 된다. .......

참고 자료

 이야기 인물 한국사 1 (p272~278) / 한길사 / 이이화
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 연구 (p23~47) / 문학과 지성사 / 이만열
 한국 지성과의 만남 (p290~312) / 부산대학교출판부 / 한국문제연구소
 인터넷 자료 - 조선상고사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