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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긍정론과 부정론 및 나의생각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2 | 최종수정일 2018.03.10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많은 참고서적을 읽고 정성껏 작성했습니다. ^^
좋은 참고자료가 되길 바랍니다.

목차

1. 三國史記의 편찬동기

2. 三國史記에 대한 부정적 평가

3. 三國史記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한 반론
1) 삼국사기가 사대적이라는 평가에 대한 반론
2) 신라 중심적이라는 평가에 대한 반론
3) 기존 사료를 날조 했다는 것에 대한 반론
4) 중국 측 기록을 그대로 전재한 것이라는 의견에 대한 반론
5) 불교 기사가 적은 비판에 대한 반론

4. 三國史記에 대한 긍정적 평가

5. 三國史記가 갖는 의의

6. 개인적인 의견

● 요약본

본문내용

2. 三國史記에 대한 부정적 평가

삼국사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삼국사기가 지어진 이래로 계속되고 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과 일연의 삼국유사도 삼국사기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조선시대 사가에 의해서 또 식민사관과 민족주의사관 모두에게서 비판받았지만 비판의 내용은 모두 달랐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다른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삼국사기에 대한 부정적 견해 중 먼저 사대적인 면을 들 수 있다. 단재 신채호는 삼국사기의 소루함이 사료의 부족이 아니라 김부식의 철저한 사대주의사관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였다. 김부식은 삼국을 중국 제후국의 지위로 파악했다. 진덕여왕 4년 중국의 연호를 사용한 것에 대해 비판한 사론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신라를 포함한 고구려, 백제는 중국에 신속하고 있다고 보고 이들 나라는 천자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천자의 국가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인 연호의 사용은 불가하다고 하였다. 묘청 일파가 독자적인 연호를 세우자는 주장에 반대한 그로서는 당연한 입장이었다. 즉, 김부식은 중국 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에 대한 사론에서도 나타난다. 백제의 멸망 원인을 "이에 당 고종이 두 번 조서를 내려 그 원한을 풀도록 하였으나 백제는 겉으로는 따르면서 속으로는 어기어 대국에 죄를 지었으니 그 멸망은 또한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라고 하였고 고구려의 멸망 원인에 대해서는 "겸손한 뜻이 없고 중국의 봉토를 침략하여 원수를 만들고, 그 군현에 들어가 살았다. 이 때문에 전쟁이 이어지고 화가 맺어져 거의 편안할 때가 없었다. [고구려는] 동쪽으로 도읍을 옮기고 수나라와 당나라가 통일한 때를 만나고도, 오히려 천자의 명에 거역하여 순종하지 않고, 천자의 사신을 토굴에 가두었다. 그 완고하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으므로 여러 번 죄를 묻는 군사를 불러들였다.

참고 자료

· 김철준 <고려중기의 문화의식과 사학의 성격>
· 박인호 <한국사학사대요>
· 신형식 <고려전기의 역사인식>
· 윤종일 <김부식의 역사인식의 일연구>
· 정구복 <김부식과 『삼국사기』>
· 인터넷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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