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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와 민족운동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2 | 최종수정일 2018.03.10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조선에 기독교사상이 유업된 경로와 배경 그리고 그 전개과정에 대해 요약정리한 글입니다.
좋은 참고자료가 되길 바랍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들어가서
1. 기독교의 유입과 조선인의 입교
2. 기독교의 전개과정

Ⅲ. 맺음말

본문내용

1. 기독교의 유입과 조선인의 입교
천주교보다 늦게 들어온 기독교는 천주교 박해 때문에 주춤하다가, 개화기에 포교활동의 개방 분위기를 타고 들어왔다. 개항 이전에도 일부 선교사들이 포교삼아 들어오려다가 제국주의 첨병이라는 당시 험악한 인식으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조선 기독교는 1878년 한 무리의 의주 상인들이 만주에 건너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서북 지방을 중심으로 상당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뒤 1884년 미국 선교사 알렌이 서울에 주재하는 미국 공관 소속 의사 자격으로 조선에 입국했다. 그 다음 해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입국해 본격적으로 선교 계기를 맞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교적인 전통사상이 지배적이어서 기독교 선교사업이 수용되는 것은 어려웠었다. 이것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미국 감리교 선교사 맥크레이(R.S. Maclay)가 1884년 6월에 고종의 윤허를 받은 것이 선교사업이 아니라, 교육과 의료사업이었다는 사실로서도 짐작할 수 있다. 선교사들은 선교의 한 수단으로 교육에 먼저 착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업은 칼빈(J. Calvin)이나 녹스(J. Knox)가 표현한 "교회 옆의 학교"라는 말이 조선에 있어서는 "학교 옆의 교회"라는 말로 대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시에 한국은 고종이 공포한 「홍범14조」와 「교육입국조서」에 잘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이 근대교육을 추진함으로써 나라를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따라서 당시 `한국정부는 서구의 교육제도와 발전된 기술문명을 수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려고 하였고, 선교사들은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한국 땅에 교육기관을 세우고 그것을 통하여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는 점에서 양쪽의 관심사가 일치하였기 때문에` 기독교 학교가 발전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고등학교 국사(하)』, 국사편찬위원회, 교육부, 2001.

『바로 보는 한국 근현대 100년사』, 김송달, 거름, 1998.

『한국의 기독교』, 기독교역사문화연구소, 겹보기, 2001.

『韓國 近代宗敎와 民族主義』, 姜敦求 ,集文堂, 1992.

『한국사상사의 과학적 이해를 위하여』, 한국역사연구회, 청년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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