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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비교

저작시기 2004.06 |등록일 2006.06.22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400원

소개글

역사서를 보기에 앞서 그 저자와 저술의도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를 위해 본문에서는 사마천의 저서인 『史記』를 보기에 앞서 사마천의 역사관과 인생관, 그리고 인물평가에 나타난 그의 사상을 살펴보았다. 또한 『史記』에 대한 보다 상세한 탐구를 위해 『史記』와 함께 뛰어난 역사서로 꼽히는 반고의 『漢書』와 『史記』를 비교해보고 그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목차

Ⅰ. 서 언
Ⅱ. 본 문
1. 사마천의 『사기』
2.『사기』의 인물평가
3. 사마천의 역사관과 인생관
4. 반고의 『한서』
5. 『사기』와 『한서』의 차이
①『사기』와 『한서』의 시대적 차이
② 사마천과 반고의 사상적 차이
③『사기』와 『한서』의 의의비교
Ⅲ. 결언

본문내용

Ⅰ. 序言
『史記』 130편은 상고 시대부터 사마천 자신일 살았던 시대까지의 중국의 역사를 뛰어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역사적 안목으로 쓴 대서사로서, 모든 중국역사의 전범(典範)으로 일컬어진다.
사기를 살펴보기에 앞서 사마천은 과연 누구이고, 『史記』를 지은 목적은 무엇이며, 그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사마천은 한대 사람으로 한무제 때 아버지 사마담의 뒤를 이어 태사령이라는 직분에 있었다. 태사령이란 본래 궁중의 예의 제도를 관장하고, 천문 역법에 따라 해가 끝나면 새 역법을 바치며, 나라의 큰 행사가 있으면 길일과 기일을 선택하여 올리는 직책으로, 따지고 보면 역사 기록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태사령으로 있으면서 궁궐에 소장되어 있는 모든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었고, 또 마음만 먹으면 자료 수집을 위해 유적을 답사할 수 있어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역 사람들에게도 전해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이 , 그 자신의 저술 방침대로 집필해 나갈 수 있는 기본 바탕을 제공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한 목적과 의도는 사마천이 태사령이라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기 위해 저술에 임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은「史記列傳」의 맨 마지막에 있는 「태사공자서」에 상세히 나타나 있다. 사마천이 『史記』를 지은 목적은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發憤의식의 소산이다. 사마천은 부친인 사마담의 유언에 따라 10여 년간에 걸쳐 『史記』의 집필에 착수하였으나, 이릉을 변호하다가 한무제에 의해 사형대신 궁형을 받은 기원전 98년 이후, 집필 방향을 바꾸게 된다. 사마천은 친분이 그다지 두텁지도 않은 이릉을 변호하다 도리어 화를 당하게 되었으니, 그의 비통한 심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궁형을 당할 것인가 자결을 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길목에서 사마천은 궁형의 치욕을 감수하고라도 살아남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자신이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 결코 구차한 행위가 아니며, 發憤著書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한 유일한 선택임을 의미한다.

참고 자료

Burton Wanston저, 박혜숙역, 1955,『위대한 역사가 사마천』, 한길사,
무전태순 저, 이동혁 옮김, 2000『사마천-사기의 세계』일각서림
김영수, 1999 『지혜로 읽는 사기』푸른숲, 서울
천퉁성 지음, 정성철 옮김, 2003, 『사기의 탄생 그 3천년의 역사』청계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2002, 『사기열전 상,하』을유문화사
이한조, 1971 『백이와 사마천-사기총서로서의 백이열전』「대동문화연구」vol.8, 20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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