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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前秦 부견정권의 성립과 비수전(위진남북조시대)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6.06.21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중국 정통왕조 지향적 성격을 지닌 대표적 국가가 苻堅의 前秦이다. 전진은 부견 때에 한족 출신인 王猛의 절대적인 보좌로 오호의 국가들을 차례로 멸망시켜 화북 대부분을 통일하였고 오호 십육국 시대 중 가장 안정된 시기라 일컬어진다. 이상주의자라 할 수 있었던 부견은 화북통일의 여세를 몰아 남방까지의 통일을 위해, 주위의 반대를 무릎 쓰고 원정을 감행하지만 淝水에서 동진의 謝玄에게 대패한 직후 부견은 죽고 전진은 멸망한다. 비록 비수전에서 패배하여 완전한 중국의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역사에 있어 만약이라는 말을 섣불리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전진이 비수전에서 승리하여 동진을 꺾고 남방까지의 통일을 완수 하였다면 이는 이민족에 의한 중국 전체의 통일 및 지배를 1000년 가까이 앞당기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견의 전진 정권이 이러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전진 부견의 정치와 그 정권의 성격에 관해 더 깊이 공부해보고자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목차

Ⅰ. 序 言
Ⅱ. 本 文
1. 苻堅政權의 成立
2. 苻堅의 隨才擢授政策과 漢化策
3. 전진의 對夷民族政策
4. 淝水戰의 목적
Ⅲ. 結 語

본문내용

中國의 歷史는 異民族과 漢族간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魏晉南北朝 시기는 이러한 중국역사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시기이다. 후한이 삼국으로 분열되고 이는 조조의 魏에 의해 다시 통일의 기반을 다진다. . 하지만 魏는 司馬氏의 쿠데타로 그 실권을 司馬氏에게 넘겨주게 된다. 서진의 무제(사마염)은 曹魏의 원제로부터 禪讓이라는 이름아래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晉(265년)을 건국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재통일로 적대 세력 소멸에 방심했고 이에 안주한 무제는 대대적으로 군비 축소를 단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정책이 왕조의 멸망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서진은 文弱化 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匈奴族과 鮮卑族, 氐族, 羌族, 羯族을 비롯한 많은 이민족들이 이미 중국 내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서진 무제의 군비축소는 지방 세력에 대한 저항력 약화를 불러왔고 304년 흉노족의 선우 劉淵이 서진 영토내에 漢(前趙)를 건국하는 결과를 낳았다. 서진과 漢의 대결에서 서진이 항복하면서 5호 16국 시대는 시작 되었고 흉노 이외의 다른 민족들도 화북지역에서 나라를 세우고 흥망을 거듭하게 된다. 이 시대가 漢族과 胡族이 대립과 융합을 거듭하는 남북조 시대이다.
이제 5호 16국 시대에 대해 좀더 살펴보겠다. 5호 16국이라 불리는 시대는 흉노의 유연이 山西에서 자립하여 한을 건립한 서진 건무 원년(304)부터 439년 북위의 世祖 太武帝의 화북통일 까지의 약 135년을 말한다. 이 시기는 5호 민족에 의한 16여의 정권의 흥망성쇠를 거듭한 시대로 정권이 다극화 되고 불안정했던 시기이다. 이 시대의 이민족에 의한 정권수립은 일방적으로 이민족 침입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한말에서 삼국 초에 이미 스스로 귀순하거나 강제 이주된 이민족이 한족 왕조의 약체화를 틈타 한족왕조에 항거하여 자민족의 정권을 수립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이민족들은 한족과 비교해 문화적으로 낮은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한족과의 접촉과정에서 선진적이라 할 수 있는 한족문화를 적극 적으로 수용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 본래의 유목 생활을 버리고 안정적인 농경생활로 전환하고 사회적으로 그들의 국가들은 한족의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받아들인 중국의 정통왕조 지향적인 모습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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