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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와 문화]중국 춘추시대 역사와 문화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20 한글파일한글 (hwp) | 1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중국 춘추시대의 역사문화

목차

Ⅰ.서론

Ⅱ.본론
1)춘추시대
2)춘추패자의 출현
3)춘추시대의 경제
4)춘추시대의 국제사회
5)춘추시대의 사회, 문화

Ⅲ.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1)역사적 배경
패자는 춘추시대에 패권을 장악한 제후를 뜻하는 말로 흔히 춘추오패라고 한다. 춘추오패란 춘추시대를 이끌었던 다섯 명의 패자를 지칭하는 것인데, 제의 환공, 진의 무공, 초의 장왕, 오의 부차, 월의 구천 등으로 대변된다. 오의 부차나 월의 구천대신 송의 양공이나 진의 목공을 패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양공은 제나라 환공이 죽은 뒤 잠시 동안 패자가 되려고 욕심을 부렸던 것에 불과했고, 목공은 진나라 문공이 패자가 되는데 큰 도움을 줬을 뿐 자신이 패자의 지위를 누린 것은 아니었다.
춘추시대 이후 패자의 시대가 도래하기 까지는 약 9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비록 몰락한 처지였지만 춘추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동주왕실은 나름대로 권위를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평왕이 동천하여 낙읍으로 옮겨 앉은 뒤로 50년간 재위했는데, 이때만 하더라도 패자를 칭할 자가 없었다. 하지만 제후들에 의해 옹립된 왕인만큼 그는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고, 그런 상화에서 제, 초, 진의 세력이 강화되었다.
평왕 재위 당시에 정나라 군주인 무공과 문공을 이어 군주에 오른 장공은 주나라 조정일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그러나 평왕은 곽나라 군주에게 조정을 맡기려 했고, 정나라는 그런 평왕의 처사를 원망하여 주왕실에 등을 돌렸다. 평왕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나라와 서로 볼모를 교환하였다. 이때 주나라 왕자 호가 정나라에 볼모로 갔고, 정나라 공자 홀이 주나라에 볼모로 갔다.
평왕이 죽은 뒤에 손자 임이 왕위를 이었는데, 이는 평왕의 태자 예보가 일찍 죽어 예보의 아들 태손으로서 왕위를 이은 것이다. 그가 곧 환왕이다.
환왕은 곽나라 군주에게 조정을 맡기려 했고, 이 때문에 정나라와 주왕실이서로 등을 돌렸다. 환왕 재위 3년에 정나라 장공이 환왕을 배알했는데, 환왕이 그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정 장공은 화를 내면서 다시는 배알하지 않겠다며 돌아갔다. 이후 환왕은 곽나라 군주인 공작 기보에게 정권을 맡겨 조정을 이끌도록 했다. 이 일에 분노한 정 장공은 환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노나라와 허전을 바꿔버렸다. 정나라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결과적으로 주나라 왕을 무시한 처사였다. 또한 정나라는 조회나 제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통보였다. 이에 분개한 환왕은 서기전 707년에 괵, 채, 위, 진과 함께 정나라 정벌에 나섰다. 하지만 환왕은 이 전쟁에서 정나라 장수 축담이 쏜 화살을 어깨에 맞고 패전한 채로 귀국해야 했다. 환왕은 그 분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금 정나라 정벌을 계획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재위 23년인 서기전 697년에 죽었다.

참고 자료

1. 박영규, <<교양으로 읽는 중국사>>, (웅진 지식하우스.2005)
2. 이춘식, <<중국 고대사의 전개>>, (신서원.1997)
3. 이근명, <<중국 역사 상권>>, (신서원.1997)
4. 백양, <<맨 얼굴의 중국사>>, (창해.2005)
5. 김영환, <<중국 역사와 문화>>, (아이반호), PP.89~90
6. 진순신, <<중국 오천년>>, (다락원.2002)
7. 윤내현, <<중국사1>>, (민음사.1997)
8. 참고사이트,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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