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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사기권칠 항우본기제칠

저작시기 2004.08 |등록일 2006.06.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2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사기의 항우본기의 해석과 그에 따르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史記卷七 項羽本紀第七 해석
2.〈항우본기〉에서 바라 봤을 때, 항우가 유방과의 전쟁에서 거의 승리했
음에도 불구하고 천하를 제패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본문내용

항적(項籍)은 하상(下相) 相은 沛國에서부터 시작하는 물 이름. 패국에 相縣이 있었으므로 그 하류에 현을 설치하고 이름을 下相縣이라고 하였다.
사람으로 자는 우(羽)라고 한다. 처음에 군대를 일으켰을 때, 24세였다. 그의 계부 小叔父. 아버지의 작은 동생.
는 항량(項梁)이며, 항량의 부친은 바로 초(楚)의 장수 항연(項燕)으로 진(秦)의 장수 왕전(王翦)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진시황 23년, 왕전이 초를 공격하여 초왕을 볼모로 삼자, 항연은 昌平君을 왕으로 세우고 淮南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듬해 왕전 등이 초군을 공격하니, 창평군은 죽고 항연 역시 자살하였다.
항가는 대대로 초의 장수로서, 항(項) 춘추시대 나라 이름. 지금의 河南省 沈丘縣에 위치한다.
의 제후로 봉해졌기 때문에 성을 성이 항(項)이었다.
항적은 어렸을 때 글을 배웠으나, 다 마치지 못한 채 포기하고는 검술을 배웠는데, 이 역시 다 마치지 못하였다. 항량이 화를 내었다. 항적은 말하기를 ꡒ글은 성명을 기록하는 것으로 족할 따름이며, 검은 한 사람만을 대적할 뿐으로 배울 만하지 못하니, 만인을 대항할 수 있는 일을 배우겠습니다ꡓ라고 하였다. 이에 항량은 항적에게 병법을 가르치니 항적은 크게 기뻐하였는데, 대략 그 내용을 안 후에, 또한 끝까지 배우고자 하지는 않았다. 항량은 일찍이 역양(櫟陽) 관리에 의해 갇힌 적이 있었는데, 기현(蘄縣) 감옥에서 일을 하는 조구(曹咎)로 하여금 역양의 감옥에서 일하는 사마흔(司馬欣)에게 서신을 보내도록 부탁함으로써 일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항량은 사람을 죽이고 항적과 더불어 원수를 피해서 오중(吳中)으로 갔다. 오중의 현명한 인재들의 재능은 모두 항량의 밑에서 나왔다. 오중에 큰 요역(繇役) 役事.
과 상사(喪事)가 있을 때마다 항량은 항상 주관하여 일 처리를 하였는데, 은밀히 병법을 사용해서 빈객과 젊은이들을 배치하고 지휘하여, 이로써 그들의 재능을 알아두었다. 진시황이 회계산(會稽山)을 유람하고 절강(浙江)을 건너는데, 항량과 항적이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항적이 말하기를 ꡒ저 사람의 자리를 내가 얻어 대신할 수 있으리라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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