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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교육철학적 관점에서 본 퇴계이황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6.06 워드파일MS 워드 (doc)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한 퇴계 이황


1. 시작하며

<동기>

이번 학기에 조금 무리를 해서 전공과목을 뒤로하고 [교육철학 및 교육사] 과목을 신청했다. 기존에 이론화 되어있는 교육철학을 알지 못함은 물론, 나만의 철학 내지는 마인드를 미처 다 가지지 못한 채로 교생실습을 나가려다 보니, 불안감이 엄습했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 실습 내내 나는 어떤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수업을 할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봤지만, 정답은 없었다. 기준이란 것이 한 순간에 딱 하고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의 교육철학의 내용을 바탕으로 좀 더 다양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목차

1. 시작하며
2. 생애
3. 업적
4. 교육적 의미
5. 결론

본문내용

<교육적업적>

풍기 군수로 있을 때는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을 조정에 요청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최초의 사액을 받게 하였다. 그가 풍기 군수직을 물러나기를 결심한 것은 당시 외척들이 권력을 독점하여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벼슬에 나가 한 시대를 바로 잡는 일 보다 학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인간의 올바른 삶의 도리를 밝혀 후세를 위해 참다운 표준을 제시하는 것에 자신의 역할이 자각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퇴계는 50세 이후에는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 및 도산서당을 세우고,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르치며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60세에 도산서당을 지어 스스로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인도하는데 힘썼는데 그의 강학은 사망하기 전달까지 계속되었다.
<사망>
선비의 품격은 생애를 마치는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퇴계는 70세 되던 1570년(선조 3년) 12월 8일 세상을 떠났다.

3. 업적

퇴계 이황은 공직자로서 ① 깨끗한 청백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② 백운동서원을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으로 만들었으며, ③ 79번이나 벼슬을 사퇴하여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 실천하는 삶을 살았고, ④ 경복궁의 기문과 상량문, 현판 글씨, 외교 문서 등을 작성하여 그 명성을 떨쳤다.

사상가로서의 퇴계 이황은 ① 고봉 기대승과의 4단 7정에 관한 논쟁을 통하여 학문적 논쟁의 모범을 보여주고,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② 수양론의 실천방법을 정밀하게 규명하여 조선시대 도학의 기본틀과 독자성을 정립하였고, 이로 인해 ③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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