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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율곡 이이의 인심도심 논쟁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6.06.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900원

소개글

율곡 선생과 성혼의 인심도심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리포트 입니다.
매우 잘 정리 되어 있습니다.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1. 율곡의 생애

2. 율곡의 철학 사상
(1) 이기론(理氣論)
(2) 사단칠정(四端七情)

3. 율곡의 정치사상

4. 인심도심 논쟁의 전개
(1) 이이와 성혼의 논쟁
(2) 이이의 인심도심에 관한 견해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율곡의 생애
율곡은 1536년(중국 명나라 세종 황제 15년, 조선 중종 31년)12월26일 새벽 인시(寅時, 3~5시 사이)에 강릉부 북평촌(현재 강릉시 죽헌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의 이름은 현룡(見龍)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모부인 신사임당이 태몽에 용(龍)을 보았기 때문이다. 6세에 어머니를 따라 한성(漢城, 현재의 서울)으로 이사를 하여 7살 때 한문의 문리(文理)가 통하고,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를 모두 이해하였다. 8세가 되던 어느 날 파주의 율곡 마을에 있는 화석정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문으로 된 시를 지었다. “기러기 소리는 끊어져 저녁 구름 속에 잠긴다.” 라는 구절이 그의 짦은 생애를 암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548년 13세에 진사(進士)시험에 합격하여 학문을 이루고, 그의 이름이 서서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16세가 되던 해 5월 모부인 신사임당이 별세한다. 이때부터 율곡은 인생의 회의를 느꼈을 뿐 아니라, 학문 또한 일정한 스승이 없이 혼자서 지식을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7세에 노천의 말에 발분(發憤)하여 독서를 하다가 넓적다리에 병을 얻기도 하였다.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갔다 1년을 머문 뒤 내려와 강릉에서 머물며, 22세에 성주(星州) 목사(牧師) 노경린의 딸과 결혼한다. 그해 겨울 과거(科擧)에 급제했는데, 이때의 글이 우주론적 철학 논문이라고 볼 수 있는<<천도책>>(天道策)이다.
1564년 29세 여름 생원(生員)시험에 1등으로 합격하고, 9월에 정6품에 해당하는 호조좌랑에 임명된다. 1565년 11월 김명원과 함께 사간원 정언(正言)에 발령을 받는다. 1568년 2월 율곡은 33세의 나이에 사헌부 지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고, 같은 해 5월 천추사 목첨이 북경(北京)에 가자 서장관의 자격으로 그를 동반하여 중국에 갔다.

참고 자료

손인수, 《율곡사상의 현대적 공간》, 다문출판사, 1996.
이종술, 퇴계 율곡의 비교연구, 수덕출판사, 1985.
황의동, 《율곡학의 선구와 후예》, 예문서원, 1999.
황준연, 《율곡 철학의 이해》, 서광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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