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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및 철학]게으를 수 있는 권리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06.0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저자는 자본주의 윤리가 노동자의 육체를 저주하고 있으며 휴식이나 감사의 인사도 없이 계속해서 돌고 도는 기계의 일부로 남아 있는 저주 받은 운명을 살도록 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윤리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도 노동에 대한 사랑, 즉 환상에 빠져서 스스로 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생명까지도 소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고대 철학자들과 시인들이 게으름을 찬미했으며 예수의 산상수훈에서의 설교와 여호와의 수염을 깍지 않은 모습이 게으름에 대한 찬미이며, 본보기였다고 종교의 힘까지 빌어 왔다.
우리는 인생의 행복을 위한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위한 노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는 노동의 노예가 되어있지 않은가?

목차

1.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노동의 숭배
2. 노동의 축복
3. 과잉 생산의 결과
4. 새술은 새포대에
<부록 및 서평>

본문내용

<1883년판 저자서문>
기독교 윤리를 비루하게 모방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윤리는 노동자의 육체를 저주한다. 그리고 생산자에게는 가능한 최소한의 필수품만 줄 것이며, 그들의 즐거움과 온갖 열정을 억누르며, 휴식이나 감사의 인사도 없이 계속해서 돌고 도는 기계의 일부로 남아 있는 저주받은 운명을 살도록 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일할 권리(Right to Work)」에 대한 이 논박문은 1880년에 주간지인「평등(Egalit)」지에 두 번째 시리즈로 게재된 바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다시 부르주아 철학자들과 소책자 저술가들이 수행했던 전투를 시작해야 한다. 질서정연하게 진군해 자본주의 윤리와 사회 이론을 공격해야 한다. 또 온갖 윤리 체계를 내놓은 위선자들의 면전에서 이 세상은 이제 더 이상 노동자들의 눈물바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해야 한다.

Ⅰ.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노동숭배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노동자 계급은 기이한 환몽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망상이 개인과 사회에 온갖 재난을 불러일으켜, 지난 2세기 동안 인류는 크나 큰 고통을 겪어왔다. 다름 아니라 노동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격렬한 열정이 바로 이러한 환상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열정이 어찌나 격렬한지 한 개인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생명력까지 소진한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온갖 형태의 지적 타락을 가져오는 동시에 모든 생명체를 기형으로 만드는 원인이다. - 비참하게 기계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을 보라.
고대 철학자들은 노동에 대한 경멸을 가르치며 노동은 자유인을 타락시킬 뿐이라고 설파했으며, 시인들은 신들이 보내준 선물인 게으름을 찬미했다.
예수는 산상수훈 중에 “저 꽃들이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결코 이 꽃 한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는 못하였다”라고 게으름을 설교했다. 수염도 제대로 깍지 않고 무슨 일을 할 때면 화를 내곤했던 여호와는 숭배자들에게 이상적인 게으름의 최고의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는 딱 6일만 일하고 영원히 휴식을 취했던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에게 떨어진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재난은 모두 노동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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