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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사]언론인 위암 장지연

저작시기 2005.10 |등록일 2006.06.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Ⅰ. 서론

Ⅱ. 장지연의 생애와 사상
1. 장지연의 생애
2. 장지연의 언론사상

Ⅲ. 장지연의 언론 활동
1. 시대적 배경
2. 언론활동 :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Ⅳ. 결론 : 친일여부 논란

본문내용

Ⅰ. 서 론
위암 장지연은 우리나라 언론 초창기의 대표적인 언론인으로서 한국 언론인의 귀감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가 한국 언론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은 비단 그의 뛰어난 문장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서릿발 같은 기개와 굽힐 줄 모르는 곧은 자세가 나라의 운명이 기우는 어두운 시기에 더욱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언론사에 길이 남을 명논설을 쓴 언론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유교연원(朝鮮儒敎淵源)을 쓴 유학자요 실학자이며 경세학자(經世學者)로도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다. 또한 수많은 저술활동을 벌이는 한편, 휘문의숙장과 평양 일신학교장을 맡은 바도 있는 교육자이기도 하고 대한 자강회를 발기하여 개화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역시 언론을 통해서 전개되었고, 또 발휘되었다. 그는 국내에서 한말 대표적 지도지인 <황성신문>의 주필과 사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서 멀리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까지 망명하여 『해죠신문(海潮新聞)』의 주필로도 활약하였고 경남진주에 가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의 주필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는 편안히 앉아서 붓을 놀린 나약한 선비가 아니라 행동하는 지사였고, 그 행동반경도 넓었던 구국의 투사였다.
여기서는 한말 언론계를 대표할만한 ‘언론인 장지연’의 활동을 언론활동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와 그가 언론인으로 수행했던 역할과 업적을 당시의 언론 상황과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장지연의 친일여부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한다.

Ⅱ. 장지연의 생애와 사상
1. 장지연의 생애
장지연은 1864년(고종원년) 음력으로 11월 30일 경상북도 상주목(尙州牧) 내동면 동곽리에서 아버지 장용상과 어머니 문화유씨 사이에 독자로 태어났다. 그는 영남의 명문인 인동 장씨의 후손으로, 대대로 인동부 인의방(仁同府 仁義坊)에서 살았는데 할아버지 대에 상주로 옮겼다. 처음에 이름을 지윤(志尹)이라 했다가 후에 지연이라고 했고, 자(字)는 화명(和明)에서 순소(舜韶)로 고쳤으며 호는 위암 또는 숭양산인(崇陽山人)이라 했다.

참고 자료

구자혁, 장지연 :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 동아일보사, 1993
김민남 외, 새로쓰는 한국언론사, 도서출판 아침, 1993
김민환, 한국언론사, 사회비평사, 1996
송건호 外,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도서출판 다섯수레, 1998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 한국 언론과 민족운동,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
정진석, 한국언론사, 나남, 1990
정진석, 장지연의 애국적 언론관, 교수아카데미총서 vol7 No1, 일념, 1994
천관우 외, 偉唵 張志淵의 思想과 活動, 민음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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