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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삼국의 고분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6.05.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삼국시대 각 나라의 고분에 대하여

목차

고구려고분
신라고분
백제의 고분

본문내용

고구려의 고분

고구려 유적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에는 성곽외에 고분이 있다. 전자는 고구려의 국가 유지를 위한 고구려인의 땀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고구려인의 삶과 의식을 반영해 주는 건축물이다. 특히 고분은 단순한 “시체의 매장처”가 아니라 당시의 예술과 과학의 결합체인 동시에 고구려인들의 현세와 내세가 공존하는 종교관을 반영해준다. 무엇보다도 고분벽화는 미술, 음악, 무용, 기예, 풍속과 신앙세계가 공존하는 고구려 문화의 정수가 되기 때문에 그 존재 가치가 크다.(이러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그 특징으로 당시 사회 생활의 표현 ‚힘과 아름다움 ƒ생동감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벽화는 당시의 계급적, 종교적 제약과 환상의 동물의 표현에 따라 ‘종교적 해독’으로 회화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남겼다는 주장이다. 「고구려 문화」)
무용총, 삼실총, 장천1호묘의 천마상(천마총)과 그 형태가 비슷하여 문화교류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고구려 고분에는 석총과 봉토석실분(토총)으로 대표된다. 전자는 초기의 형태이며, 후자는 중․후기의 양식으로 일반화 되었다.

-석총
석총은 석광(石壙: 돌로 만든 굴)만 있을 뿐, 문과 연도가 없으며 토총은 석실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문과 연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무덤은 존재시기나 기원과 형태가 어느 정도 밝혀짐에 따라 4~5세기 경에는 적석총이 쇠퇴하고 봉토묘가 발달하면서 토총이 고구려후기 무덤을 대표하게 되었다고 보인다. 고구려는 문화적,종교적으로 고조선과 부여와 연결되기 때문에 고조선의 돌무덤과 부여의 돌널 무덤이 둘 다 고구려로 이어진 것이다. 적석총은 대체로 흙이 섞인 자갈로 터를 평평하게 고른 다음 주위에 큼직큼직한 돌을 쌓아서 묘역을 만들고 있어 고구려 초기의 무기단적석묘(無基壇積石墓)로 전통이 이어졌음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석총은 선행하는 하나의 특정묘제와 기원을 찾기보다는 앞선 여러 가지 묘제와의 관련속에서 찾아야한다고 하겠다.이 석총의 크기는 계급의 차이에 따라 달리 축조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대개 지배계급의 무덤으로 생각된다. 그 외형은 방형(方形)또는 장방형(長方形)이 많으며, 주검의 위치는 무덤 중심부에 두고 있다. 그리고 분릉을 쌓는 형태에 따라 무기단과 기단적석총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간단한 무덤칸이 있는 것과 완전한 무덤칸이 있는 것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주검을 지상의 무덤중심부에 묻었기 때문에 무덤의 크기와 높이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돌로써 방대한 무덤을 축조하려면 반드시 견고성이 요구되었음도 물론이다. 더구나 시기가 내려오면서 계단식분릉의 세련미는 석총을 보다 장중하고 안정감을 주게 하였으니 장군총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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