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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국민사법참여제도안’의 국민참여재판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참심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대안 -

목차

Ⅰ.서론

Ⅱ.국민사법참여제도안의 주요 내용
1.법학전문대학원설치
2.국민의 사법 참여
3.공판중심주의확립
4.인신구속 및 국선변호제도 개선
5.재정신청 전면확대
6.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7.군사법제도개혁

Ⅲ.국민의 사법참여안의 ‘국민참여재판’ 배경 및 내용
1.국민 참여 재판제도’ 배경제도
1)참심제
2)배심제
2. 국민참여 재판제도 주요내용

Ⅳ.국민참여재판 법안의 쟁점
1.위헌논란
2.현실문제
3.국민의 참여의지

Ⅴ.법안의 검토
1.위헌논란
2.현실문제
3.국민의 참여의지

Ⅵ. 국민사법참여안의 참심제도 도입 적절성

Ⅶ.마치며

본문내용

Ⅰ.서론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과 진정한 독립을 요구하는 소장판사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들의 요구를 담아내려고 대법원이 설치한 기구가 사법제도발전위원회였다. 이 위원회 논의 결과, 사법부 굴종의 대표적 상징이었던 서울형사지법이 폐지되고 법관회의가 설치됐다. 또 판사 수가 늘어나고 시·군법원과 고등법원 지부 등이 설치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처가 법원의 업무경감이나 편의만을 위한 제도개선에 그쳐, 당시에 분출하던 법원 내부의 개혁 분위기를 미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5년에는 정권 차원의 사법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법률서비스 및 법학교육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세계화추진위원회가 로스쿨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청와대 주도의 사법개혁에 대한 법조 직역의 반발은 거셌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설치돼 법조일원화와 법조인 양성제도 개선 등이 논의됐으나 법원에 대한 단순한 권고 수준에 머물렀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등으로 위기에 빠진 검찰이 위원회의 건의대로 검사동일체 원칙을 뒤늦게 폐지한 것이 그나마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정권 차원의 숙제처럼 시도됐던 사법개혁이 큰 성과를 보지 못했던 이유는 법조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일방적인 움직임에 당사자들의 반발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또 강력한 후속 추진기구가 뒷받침되지 못해 ‘메아리 없는 선언’에 그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사법개혁위원회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로 이어지는 참여정부의 사법개혁 움직임은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2003년 8월 대법원은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국민적 열망을 무시한 채 서열과 기수에 따른 대법관 제청을 유지했다. 이에 대해 법원 안팎에서 제청 철회와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제청 철회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사법개혁 요구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대법원은 사법개혁을 청와대와 공동추진하기로 합의하고, 대법원 산하에 법조계·언론계·경제계·행정부·시민단체 대표가 참여하는 사법개혁위원회를 설치했다. 1년2개월 동안의 논의 끝에 2004년 말, 법조인 양성제도와 공판중심주의 도입 등 개혁과제의 뼈대를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이어 이를 입법 단계까지 구체화하는 추진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됐다. 사개추위는 사법개혁을 실행하고 뒷받침할 각 부처 차관들이 모인 실무위원회와 장관들이 참여하는 본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사법참여제도안의 주요 내용’ 법학전문대학원 신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제도, 공판중심주의 확립, 국선변호제 개선 등 까지 완성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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