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한국사]신채호의 무정부주의에 대한 고찰

저작시기 2005.03 |등록일 2006.05.2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신채호는 1920년대 한국의 근대적 민족 역사의식을 확립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기존의 여러 연구들은 신채호의 초기 역사 인식과 말기에 이르기까지 역사 인식 및 사상 변화에 대하여 체계적인 접근과 분석을 다루었다. 정창렬 교수의 「20세기 前半期 民族問題와 歷史意識-申采浩를 중심으로」 논문에서도 신채호의 역사의식 변화에 따라서 20세기 전반기의 한국 역사학의 변화를 짚어가고 있다.

신채호의 역사인식 단계를 크게 3단계로 나누어서 優勝主義 歷史意識(1907~1911), 民族主義 歷史意識(1920년대 초~1927), 無政府主義 歷史意識(1928~1936)로 규정짓고, 사상변화의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優勝主義 歷史意識 단계에서는 1910년에 있었던 한일합병을 계기로 國粹的 優勝主義 歷史意識으로 심화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금 한 장을 따로 할애하여 특히 신채호의 유교 인식의 변화 부분에 대해서 상술한다. 다음으로 民族主義 歷史意識 단계에서는 신채호가 서구의 학문과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의 영향을 받아, 개별 민족의 이해․시비․가치의 특수성과 상대성을 인식하여 종래의 국수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후로 사회진화론적 한계를 극복하여 帝國主義의 모순과 폐단을 직시하고, 여기에 대항하기 위한 民族主義 歷史意識의 확립을 이루어내었다고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말기의 신채호의 역사인식을 無政府主義 歷史意識으로 파악하고, 1928년 이후의 신채호를 무정부주의자로 평가한다.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 현실의 한계를 인식하여, 독립을 위해서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였다고 판단하고, 무정부주의 사상이 민족주의적 지향의 강인성과 그의 변혁사상을 변질시키고 동요하게 한 것으로 결론짓는다.

신채호의 사상변화의 모습을 역사적 현실과 그가 쓴 글들을 통해서 다각적으로 짚어가고, 큰 흐름을 잘 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기 단계의 신채호를 무정부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이 논문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논문들에서도 말기의 신채호를 무정부주의자로 평가해왔다. 이는 신채호의 말기 운동 모습과 그가 남긴 글들에서 유추하여 ‘무정부주의’로의 필연적 귀결을 가져온 듯하다. 하지만 그가 정말 사상적 변화를 통해서 무정부주의자로 전환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발표 시간에 이루어졌던 일련의 토의들에서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좀 더 생각해 볼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고, 쪽글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읽게 된 서중석 교수의 논문은 생각의 방향을 잡아가는데 도움을 주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먼저, 역사적 사실로 명확히 남아 있는 신채호의 운동 행적들을 살펴보자. 1926년에는 在中國 조선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하였고, 1927년에는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조선대표로 참가하였으며, 1928년 4월에는 무정부주의 동방연맹 北京會議 선언문을 집필하였다. 표면적으로 이러한 운동의 모습은 이전의 모습과 비교하였을 때, 신채호가 무정부주의 사상으로 전환을 한 것이라 쉽게 결론짓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의 모습도 전술적인 측면으로 해석이 된다면,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전략의 변화에 의해서 전술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큰 대의(大義)는 유지한 채,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꾀할 가능성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신채호에게 있어서 그동안의 가장 큰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그가 사상의 중심에 잡고 있었던 대의(大義)는 무엇이었는가? 그는 식민지 현실 속에서 한민족이 이민족의 억압을 받지 않고, 민족 단위의 국가를 이룰 수 있는 ‘독립’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그것은 중기의 민족주의 사상에서뿐만 아니라, 말기를 일관하는 공통된 목표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동안의 운동 방법으로는 일제가 타파될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민족 내부에서 조차도 외교론․준비론 등으로 의견이 분립되어 일제 통치체제에 순응하는 듯한 논의가 제기 되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독립’이라는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1운동에서 ‘민중의 힘’이라는 가능성과 ‘비폭력 운동’의 한계를 동시에 느꼈을 그는 무정부주의에서 내세우는 ‘방법론’에 주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신사조나 새로운 학문 등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왔다. 초기 유교 지식인에서 출발했지만, 세계 정세의 인식에서 사회진화론적 인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또 그 사회진화론적 인식의 모순과 한계를 인식하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역사인식을 확립하였다.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릴 줄 아는 모습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에 대한 사상 역시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을 가능성을 추론해볼 수 있다. 따라서 전적으로 무정부주의에 대한 신뢰와 사상의 전환보다는 독립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만 운동 노선을 바꾸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참고 자료

․ 정창렬, 「20세기 前半期 民族問題와 歷史意識-申采浩를 중심으로」, 『한국사인식과 역사이론』, 지식산업사, 1997.
․ 서중석, 「신채호의 무정부주의에 대한 소고」,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조동걸선생 정년기념논총간행위원회, 1997.
․ 김강녕, 「단재 신채호의 정치사상」, 『단재 신채호의 현대적 조명』, 대전대 지역협력연구원 편, 도서출판 다운샘, 2003.
․ 민찬, 「단재 소설의 경로와 전통의 자장」, 『단재 신채호의 현대적 조명』, 대전대 지역협력연구원 편, 도서출판 다운샘, 2003.
․ 신용하, 「申采浩의 無政府主義 獨立思想」,『신채호』, 강만길 편, 고려대 출판부, 1990.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