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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교통로의 발달에 따른 공주시의 변화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06.05.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충청남도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공주시는 백제시대에는 도읍지로써 찬란한 백제문화를 꽃피운 우리나라의 중심이었고, 1931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로써 충청도의 중심지적인 위치였다. 이는 풍부한 수량의 금강 수운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써의 기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경부선과 호남선이 대전을 관통함으로써 대전이 새로운 교통의 요지로 부상하게 되고, 점차 수상교통이 쇠퇴하게 되어 공주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공주시는 기존의 수상교통의 요지에서 벗어나 육상교통을 요지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며 더불어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설 것으로 계획됨에 따라 쇠락도시에서 신 발전 도시로의 새로운 도약이 기대되고 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금강수운의 발달에 따른 도시의 발전
3.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의 쇠락
4. 새로운 교통 중심지로의 도약
5. 맺음말

본문내용

내륙수로는 도로 및 철도의 건설과 함께 내리막 길에 접어들었다. 일제시대에 건설된 1, 2등 도로는 마차의 이동이 가능하여 상당량의 화물을 수로로부터 견인하였고, 경부선 철도 역시 동일한 이유로 소항종점인 부강 일대의 지역구조를 크게 바꾸어 놓았으며, 호남선은 금강 남부의 하항 상권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1925년 경남 도청의 부산 이전과 더불어 우리 근대 도시사의 가장 극적인 드라마로 기록되는 충남도청 이전 파동은 당시 조선과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도청의 대전 이전은 1909년 대전이 호남선 분기점으로 결정된 때부터 계속 현지 일본상인 기성회를 중심으로 제기된 사안이었는데, 반대파인 공주쪽 군민들과 첨예한 대립을 빚으면서 조선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관심사가 된다. 실제로 대전의 일본 상인들은 총독부에 뇌물까지 공수하여 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총독부는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리는 요지에 있는 신흥 도시 대전을 지방 통치의 거점으로 점찍고 강력하게 이전 계획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총독부 발표 뒤 공주 지역 유지들의 결사적인 로비로 민정당이 다수당이던 일본 중의원은 도청 이전 예산을 백지화시켜 버린다. 결국 도청 이전 문제는 반전을 거듭하는 초유의 정쟁으로 번졌으며 조선의 행정 문제가 일본 본토의 정쟁거리로 번지자 일본수상까지 중재에 나서게 되었다. 결국 귀족원과 총독부의 적극적인 공작으로 대전 이전안이 확정되고 이 결정으로 갈대 무성한 넓은 들녘이었던 ‘한밭벌’ 대전은 오늘날 중부권의 중추 도시로 떠올랐고, 조선 시대 4대 도시로까지 꼽혔던 공주는 1930년대 오히려 인구가 줄면서 지방 소도시로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

참고 자료

국토지리정보원, 한국지리지-충청편, 국토지리정보원, 2003.
노형석,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생각의 나무, 2004.
신정일, 다시쓰는 택리지1, Humanist,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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