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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해방 후 3년간 민족 국가 건설 운동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머리말

2.지방인민위원회
1)지방인민위원회 개관
2)경상남도 인민위원회

3. 해방 직후 부산, 경남지방의 변혁 운동
1) 부산, 경남지방 변혁운동 전개의 배경과 구조
(1)일제하 민족해방운동의 영향
(2)해방정국의 구조
2)건준과 치안대의 결성
각 시・군 인민위원회의 조직과 활동

4. 부산・경남의 미군 진주와 점령정책
1)미군 진주와 구식민통치기구의 복구
2)인민위원회의 탄압

5. 10월 항쟁
1)항쟁의 원인
2)항쟁의 영향

6. 해방 직후 마산지역의 사회운동
1) 해방 직후 마산의 사회상황
2) 국가 건설의 기반을 닦기 위한 사회운동
3)민주개혁, 임시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사회운동
4)마산 지역 사회운동의 특징

7. 맺음말
※ 경남지역 민간인 학살의 연구 현황과 과제

본문내용

1.머리말
해방 직후 지방은 새로운 사회와 국가건설을 지향하는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열망이 조직적 형태로 표출된 인민위원회와 이를 부인하고 탄압하는 미군정 간의 이중권력 구도속에서 각 세력이 상호 갈등․대립하고 있었다. 중앙의 인민위원회에 비해 지방인민위원회는 미군정 실시 후에도 일정하게 민중권력으로 기능했으며 인민공산당의 실질적인 기반이 바로 지방인민위원회였던 것을 감안 할때 지방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해방 직후 지방차원의 움직임은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글은 지방 직후 경남지방 인민위원회의 결성과정과 조직활동, 해방공간에서 지방주민의 압도적 지지위에 실질적인 주민자치기간으로서 기능했던 인민위원회가 미군정에 의해 와해되어가는 과정과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10월 항쟁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해방공간에서 경남지방의 변혁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2.지방인민위원회
1)지방인민위원회 개관
1945년과 1946년에 있어서 한반도 전역은 도, 시, 군 및 마을 단위까지 존재한 ‘인민위원회’로 가득 차 있었다. 북한에서는 인민위원회가 정권 수립의 대중적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남한에서는 국토의 반이 넘는 지역에서 이들이 각기 다른 기간 동안 통치를 하였다. 이들 인민위원회들은 지방에 뿌리를 박고 지방에 책임을 지는 조직으로서 한국 정치의 가장 희귀한 형태의 표본이었다.
인민위원회의 자연발생적이며 자의에 따른 구성은, 예를 들면 토지의 조건들, 지리적 위치, 인구의 이동 및 근대화된 정도 등의 특정한 지역적, 환경적, 사회생태학적 차이에 따른 정치적 참여 수준의 관계를 판단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해방이 되자 한국의 13개 도마다 도 단위 지부가 불과 수일 안에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8월 15일 이후의 3개월 사이에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의 지방지부가 가장 작은 마을 단위까지 번창해 갔다. 9월 6일의 조선인민공화국의 성립과 더불어 지방의 건준 지부들은 비교적 쉽게 인민위원회들로 개편되었다. 아주 적은 경우에만 건준 지방 지부들이 이러한 개편을 거부하고 건준의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한국민주당 같은 타정치단체에 합류하거나, 아니면 10월에 가서 신생 인민당에 합류하였다.

참고 자료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일월서각, 1986.10
역사문제연구소, 『한국근현대 지역운동사』영남편, 여강, 1993
박철규, 「해방 직후 마산지역의 사회운동」,『역사연구』, 1997
전갑생, 「경남지역 민간인 학살 연구의 현황과 과제」, 『역사와 경계』56, 2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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