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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작품분석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김영하씨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작품 분석을 주제로 한 발표문입니다^^;; A플러스 받은 거예요 ㅎ

목차

1. 들어가며
2. 본 문
1-1 에로스(섹스)
1-2 타나토스(자살)
1-3 나르시시즘
3. 나오며
4. 참고문헌

본문내용

21세기는 해체의 시대라고 말한다. 기존의 질서와 규제에 반하는 무수히 많은 코드들이 문화 제반적인 곳에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엽기, 포르노그라피, 자살……. 로젠크란츠(Rosenkranz)의 `생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시대에 조화로운 미가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극도로 이질적이고 이기적인 것들의 혼합된 감각을 쫓게 된다`는 말처럼 우리는 타락했기 때문에 더욱 저급하고 속된 문화를 찾아 갈구하고 거기에 의미를 두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즉, 작품 내에서 나르시시즘적 인간형들을 통해 그동안 터부시 되어 오던 에로스(섹스)와 타나토스(자살)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주목해야 할 점은 에로스와 타나토스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본능이 있어서 이 두 부류의 본능이 서로 융합하거나 분열되면서 인간은 삶을 영위해 간다고 주장했다. 이 두 가지의 본능은 삶의 본능(Eros)과 죽음의 본능(Thanatos)으로 나누어진다. 죽음 본능(Thanatos)이 하는 일은 유기적 생명체를 무생물 상태로 인도하는 것이다. 반면에 에로스는 살아 있는 물질을 구성하는 미립자들을 점점 더 광범위한 결합체로 묶음으로써 삶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동시에 삶을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작용하니까 두 본능 모두가 엄격한 의미에서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둘 다 생명의 출현에 의해서 흐트러진 사태를 재정립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의 출현은 삶을 지속해 가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향해 움직여 가는 원인을 제공한다. 삶 그 자체가 이 두 경향 사이의 갈등이요, 타협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는 상반된 두 가지의 본능이 상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본능을 일깨우는 계기가 없으면 우리는 이러한 본능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삶이 사회와의 관계를 떠나서 이야기 할 수 없듯이 이러한 본능도 또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본 발표문에서는『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나타난 에로스와 타나토스, 그리고 나르시시즘에 관한 연구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지그문트 프로이트 저 박찬부 옮김, 『쾌락 원칙을 넘어서』, 열린책들 1997년
김광일․심원섭『문학비평이란 무엇인가』국학자료원 1997
이상빈『에로스와 타나토스』학지사 2005
김종회․최혜실 엮음『문학으로 보는 성』김영사 2001
주정관 엮음『어느 쓸쓸한 날의 선택 자살』북스토리 2003
알프레드 알바레즈 지음, 최승자 옮김『자살의 연구』청하 2002
정동호외『철학, 죽음을 말하다』산해 2004
크리스토퍼라쉬 지음, 최경도 옮김 『나르시시즘의 문화』문학과 지성사 1989
남진우 「나르시시즘, 죽음, 급진적 허무주의 - 김영하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문학동네 96년(통권 9호) 겨울호
류보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내의 「자살 윤리학」문학동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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