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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신라 초기 국가형성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6페이지 | 가격 4,5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신화와 역사
(1) 혁거세 신화
(2) 석탈해 신화
(3) 김알지 신화
2. 사로국의 형성과 발전
3. 신라왕국의 성장과 발전
4. 신라의 왕권 강화
5. 국가의식의 성장
6. 무열계왕권의 성립과정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학년을 제외한 사학과의 고학년들은 2학년 1학기 과정에 있는 “한국 고대 문명사”의 강좌에서 고려 이전의 상고시대 역사를 배웠을 것이다. 삼국시대 중에서 가장 찬란한 역사를 이룩하였던 신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천년의 왕국, 신라”에서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등으로 상징되는 신라는 현존하는 풍부한 문화유산을 통해 작고 아름다우며 신비로운 나라로 비추어 지고 있다. 그러나 작고 아름다운 나라, 신라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만들어낸 아주 먼 옛날의 왕국이 아닌 고구려, 백제를 물리치고 통일을 이룩하여 한국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한 민족사적 위업을 이룩한 존재이기도 하다. 가장 작고 후진국이었던 신라가 대국이며 선진국인 고구려, 백제를 물리치고 통일을 이룩하여 천년 왕국을 이룸으로써 많은 유물을 후대에 남길 수 있었다. 이렇듯 한국고대사는 우리 민족의 형성사이며, 민족문화의 형성사이다. 그 중심에 신라가 위치하고 있다. 이에 “천년의 왕국” 신라에 초기 국가 형성을 신화, 문헌참고자료 등을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자료를 토대로 고찰해보려고 한다.


Ⅱ. 본론
1. 신화와 역사
(1) 혁거세 신화
혁거세 신화는 신라의 건국신화에는 혁거세가 기원전 69년 사로 6촌의 나정 근처에 나타난 알을 깨고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혁거세가 6촌장 계통이 아니라 어디에선가 들어온 이주민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주한지 13년의 세월이 지난 후인 기원전 57년에 6촌장의 추대를 받아 혁거세는 군주가 되었다고 한다. 혁거세가 이주한 기원전 69년이나 군주가 되었다는 기원전 57년은 신화 속의 시간이다. 그 중에서 13년의 시간은 혁거세 집단이 사로 지역에 정착하여 세력을 장악하고 군주가 될 준비를 한 기간이었다. 그러한 시간은 역사의 대세 또는 고고학적인 연구 성과를 토대로 역사적 시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만족할 만한 고고학적인 연구성과를 찾기 힘든 현재 역사 발전의 대세로 보면 기원전 1-2세기에 이주한 혁거세 세력은 기원전 2세기 언제인가 사로 6촌을 통합한 사로국의 왕을 배출하였다고 생각된다. 사로 6촌 지역으로 이주한 혁거세로 대표되는 세력은 개인이 아니라 일정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나정이라는 우물을 중심으로 하나의 마을을 이루며 정착을 하였다. 이 때 혁거세가 정착한 나정 마을은 사로 6촌으로 보면 돌산고허촌(후일 신라의 사량부)에 위치하였다. 그 결과 혁거세가 축조한 궁실과 궁실을 보호하는 금성 또한 사량부에 위치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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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저. 『신라 초기국가 성장사 연구』.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0.
이종욱. 『신라 초기국가 형성사 연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7』.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이종욱. 『신라의 역사 1권, 2권』. 김영사. 2002.
신형식. 『한국고대사의 신연구』. 일조각. 1984.
이기동, 이기백. 『한국사 강좌』 고대편. 일조각. 1985.
이병도. 『한국고대사 연구』. 박영사. 1976.
이인철. 『신라 정치제도사 연구』. 일지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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