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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호개방과 위정척사 운동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2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구한말 문호개방 위정척사라는 틀아래서 각기 다른 두 성격의 집단이 추구하는
이상이라던지 목표등을 열거하였으며 그에따른 의의나 역사에 미친 영향을 들을 레포트 형식으로 적어봤다.
대학교자료 제출용으로 적절하며 문호개방와 위정척사운동이라는 큰 틀 아래 비교 분석 하며 나태냈음,,
제출용으로 보완해 바로 제출해도 무방함,,

목차

Ⅰ.서론
- 국내외 정세, 문호개방과 위정척사의 방향

Ⅱ. 본론
ⅰ 강화도 조약과 개항
(1) 개항 전 일본 정세
(2) 개항론의 대두
(3) 강화도 조약의 체결과 의의
ⅱ 위정척사 운동 전개
(1) 위정척사 사상의 대두
(2)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과정
(3) 영향과 역사적 의의

Ⅲ. 결론
- 문호개방과 위정척사 간의 연관관계
- 두 사상이 근대화에 끼친 영향

본문내용

Ⅱ. 본론
ⅰ. 강화도조약과 개항
(1) 개항 전 일본 정세
조선이 개항을 결정하게 되는 주요 요인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조선에 대한 개방 압력을 들 수 있다. 일본은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의 강압으로 미일 수호 조약을 체결하고 서구 열강에 문호를 개방한 후 메이지유신(1868)을 단행하여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1870년대에는 조선 정부에 메이지 유신 정권의 수립을 알리면서 수교를 요청해 왔으나, 대원군에 의하여 거절당하자, 조선을 침공하자는 정한론이 다시 일어났으나, 시기창조론으로 일단 후퇴(부국강병)하였다. 후에 조선에서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고 정치 방향에 변화가 있는 것을 안 일본은, 외교적인 협상보다는 무력적 위협을 통해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2) 개항론의 대두
쇄국 정책을 주장하던 대원군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민씨 일족이 대두하자 조선정부의 국내외 정책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국내에서는 개항 반대론이 우세하였으나 개항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움직임도 싹트고 있었다.
박규수, 오정석, 유홍기 등 통상 개화론자들은 당시 조선 사회가 문호 개방을 위한 내적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열강의 군사적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는 개항이 불가피함을 주장하였다. 박지원의 손자이며 북학론의 영향을 받은 박규수는 청에 사신으로 내왕하하며 문호 개방을 주장하엿고, 오경석은 역관으로 청에 내왕하며 ‘해국지도’. ‘영환지략’, ‘이언’ 등의 서적을 구입했다. 유홍기는 한의사로 오경석과 친하게 지내며 서양 문물에 관한 서적을 보고 통상을 주장하였다. 통상 개화론자들의 세력은 대원군의 정권의 붕괴와 함께 성장하여 문호 개방의 여건을 마련하였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권 37, 국사편찬위원회, 1997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권 38, 국사편찬위원회, 1997
김준식, 《과목별 학습백과사전》권 2 〈한국의 역사〉, 계몽사 1994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편, 《한국사특강》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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