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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항우와 유방, 우희와 여태후

저작시기 2004.06 |등록일 2006.05.2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중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항우와 유방,그리고 우희와 여태후에 업적과 일생에 대해 요약해서 적어 놓은 것입니다..

목차

1.항우
2.한고조 유방
3.우희
4.여태후

본문내용

陰陵失道非天亡
英雄本學萬人敵
何用屑屑悲紅粧
그것을 들은 항왕은 크게 놀라 말했다. `한군이 이미 초나라를 얻었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의 사람들이 저리 많은가` 항왕은 일어나 장중에서 술을 마셨다. 항왕에게는 항상 미인이 따르고 있었는데 우희라는 총애하는 여인이 있어 어느 전쟁터나 그녀를 데리고 다녔다.
또 추(雛)라는 이름의 준마가 있어 항우는 항상 이말을 타고 다녔다. 술을 마실수록 항왕은 비분강개하여 스스로 시를 만들어 읊었다.(楚漢春秋前夜)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었건만 力拔山 氣蓋世
때는 불리하고 말은 가지 않으려 하는구나 時不利 雛不走+浙
우여! 우여! 너를 어찌하면 좋은가? 虞兮虞兮奈若何!

되풀이 하여서 노래하기를 몇 번인가, 우희도 이에 맞춰 노래불렀다. 항왕의 빰을 몇 가닥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좌우의 신하들도 모두 울며 감히 항왕을 쳐다보지 못했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가사는 아마도 후세의 사람이 항우의 심사를 해아려 만들었을 것이다. 그후 우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사기>에도 남겨진 기록이 없다. 다만 두가지 설이 나돌
송대의 문인 증공(曾鞏)의 시에 따르면 항우는 여기서 칼을 뽑아 우희의 목을 쳤으며 그 피가 떨어진 곳에 풀이 돋아나서 가련한 꽃으로 피었다 한다.그 꽃을 세상사람들은 우미인초라 불렀다한다.
초왕 항우가 한고조 유방의 군에게 공격당하여 오강(烏江)에서 망할 때, 그의 애희 우미인은 그 전날 밤에 자살했다.

구리산에서 겹겹이 포위 당했던 항우가 자기와 지난 팔 년 고락을 같이 했던 고향의 의병, 강동 자제 팔 천 용사가 모두 마음이 변하여 유방진영에 항복하고, 고향노래 초가를 불렀음을 알았을 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가?"하고 탄식했다. 여기에 항우의 해하가가 나오고, 우희(우미인)의 답항왕가가 나온다. 이때 항우는 우미인을 참아 버리고 떠나지 못하니, 우희는 항우에게 "자기가 남장을 하고 힘껏 따라 가겠으니 자기에게 보검을 달라." 하여, 항우가 무심코 준 보검으로 자기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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